2m 길이 지시봉 들고 나타난 김정은
군 간부들 앞에서 선 채로 브리핑
국가 공식 회의에서 지시봉 든 모습 처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키보다 큰 지시봉을 들고 직접 브리핑을 하는 모습이 24일 북한 매체에 의해 공개됐다. 김 위원장의 공개 행보는 지난 2일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후 22일 만이다.
이날 노동신문이 공개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 사진에서 김 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이 2m가량의 흰색 지시봉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군 간부들에게 브리핑을 했다. 현지 시찰 중 지시봉을 들고 현장 지휘를 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날처럼 국가적인 공식 회의석상에서 단상 위에 선 채로 직접 지시봉을 들고 발언하는 모습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해당 사진에서 김 위원장이 가리킨 모니터 화면이 흐릿하게 처리돼 있는데, 브리핑 당시 지도 등 군사 전력이 드러날 수 있는 정보가 띄워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 이상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의 건재함과 군 장악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모니터 화면을 가려가면서까지 사진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핵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고 포병의 화력 타격 능력을 높이는 새로운 방침을 군 간부들에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 최고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는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그런 그가 지시봉까지 동원해 ‘핵 억제력과 화력의 강화’를 군 간부들에게 강조한 만큼, 향후 북한의 군사 도발 재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2012년 말 집권 이후 북한 매체를 통해 보도된 김 위원장의 사진을 보면 군 무력 시범이나 대규모 건설 사업 등 심혈을 기울인 사안을 현지 지도할 때 지시봉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미사일 도발에 열을 올리던 2016년 3월 김정은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30㎝ 정도 길이의 짧은 지시봉을 들고 ‘고출력 고체 로켓 발동기(엔진) 지상분출 및 계단분리(단분리)’ 실험을 지도했다. 그 해 6월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서도 국방과학 부분 관계자들과 함께 환하게 웃는 김 위원장의 손에는 길이 50㎝가량의 지시봉이 들려 있었다.
김 위원장은 그 후 2016년 11월 북한군 기계화 부대의 평양 사수 기동훈련을 직접 지휘할 때도, 2019년 11월 17일 공군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참관할 때도 지시봉을 들었다.
군사 훈련 외에 김 위원장이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국책사업 현장에서도 지시봉은 등장했다. 2018년 11월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대형 조감도 앞에 서서 지시봉도 모자라 손짓까지 해가며 공사 관계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궁지에 몰려 있던 김 위원장은 제재로 인한 경제난을 타개할 돌파구로 온천관광지구 건설과 관광 산업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보름 후 북ㆍ중 접경도시 신의주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현시대의 요구에 맞는’ 도시개발을 역설하면서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지시봉을 직접 들었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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