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ㆍ끝>추락하는 아베 지지율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출범 이래 최저 수치인 27%로 나온 지난 24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상은 도쿄, 사이타마, 지바, 가나가와, 홋카이도 등 마지막으로 남은 다섯 지역을 긴급사태에서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달 8일부터 50여일간 지속된 긴급사태 선언이 끝났다. 파친코, 클럽, 카바레 등의 공간에는 여러 제한사항이 있지만 그래도 아예 문을 못 여는 것에 비하면 낫다.
◇힘 잃은 아베, 우익 매체도 비판
내각 지지율 하락과 긴급사태선언 해제 사이 인과관계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미 검찰청법 개정 논의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아베 정권이 긴급사태를 더 이상 끌고 갈 힘은 없다. 아베노믹스를 부르짖던 자신감 넘치던 지도자는 어느새 프롬프터가 없으면 아무 말도 못하는 노인이 됐고, 그의 든든한 응원군들, 이를테면 구독자 230만명의 우익 총본산 미디어 ‘사쿠라 채널’마저 아베 내각 때문에 일본이 붕괴하고 있다며 비판에 나섰다.
일본 정가에서는 보통 30%대의 지지율을 정권 유지의 위험신호로 받아들인다. 20%대 지지율이 한 번이라도 나오면 당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미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한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성 장관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아베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후보로 꼽히는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역시 아베 내각과 거리를 두고 있다. 원래부터 아베 총리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시바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시다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친아베 기시다의 변신
그는 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한 2012년 12월부터 약 5년간 핵심요직인 외무대신을 지낸 친(親)아베의 핵심이다. 내각을 떠나 당으로 복귀해서도 니카이 간사장과 함께 아베 내각을 전폭 지지해왔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는 정권의 대소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친 아베 이미지를 세탁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코로나19 때문에 아베 총리가 내각총해산을 할 수 없다고 내다본 게 아닌가 싶다. 일본 중의원 임기는 4년으로 정해져 있지만, 총리는 언제든 내각 해산을 통한 중의원 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의석이 재분배되고 새롭게 선출된 의원들로 다시 내각을 구성할 총리를 지명한다.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의석을 획득한 정당 혹은 연립 정당의 대표가 총리로 지명된다.
이런 절차, 즉 내각총해산을 거치지 않고도 총리가 바뀌기도 한다. 2009년 9월 정권교체에 성공한 옛 민주당이 대표적인데, 당시 민주당 대표이자 93대 총리였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채 1년도 안 돼 총리직을 사퇴했다. 내각총해산을 하지 않았기에 민주당의 차기 당 대표였던 간 나오토가 총리 자리를 차지했다.
1년 후에도 민주당은 내각총해산을 하지 않고 노다 요시히코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간에서 노다로 넘어갈 때 내세웠던 논리가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지역의 복구 및 부흥사업이 총선거보다 급선무’라는 것이었다. 사회적 혼란이 있는 상황에서 총선을 실시할 수 없다는 논리였고, 실제 노다는 1년 이상 총리직을 수행했다.
◇총선 어려우면 전당대회로 총리 교체?
지금 상황은 그때와 비슷하다. 코로나 19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국고교야구선수대회(고시엔)마저 태평양전쟁 이후 79년만에 열리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는 일정조차 못 잡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내각총해산 및 총선거보다 자민당 전당대회를 통해 총재를 교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총재로 새로 뽑힌 사람이 물론 후임 총리가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직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아베 총리가 끝끝내 물러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현 일본의 정치구조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럴 경우 내년 9월까지 아베 내각이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라 아베 총리가 국정장악력 결여, 리더십 부족, 지지율 하락 등의 이유로 사임한다면 자민당 총재 선거는 ‘이시바 VS 기시다’가 될 것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성대신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정신세계에서 표출되는 발언 등을 이유로 이미 논외가 되었고, 한때 반 아베의 선봉장이었던 노다 세이코 의원은 차기 총리후보 여론조사에 이름도 못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61명의 중ㆍ참의원이 소속돼 있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 고치카이(宏池会)의 대표 기시다 정조회장이, 20여명의 군소파벌 수이게츠카이(水月会)를 이끄는 이시바 의원에 비해 훨씬 유리해진다.
◇아베 아닌 누가 되든 한일관계 나아질 것
사실 누가 되든 상관없다. 누가 되더라도 한일관계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칼럼 마지막 회차인 지금에 와서야 말하지만 아베 신조는 이렇게 오랫동안 일본의 지도자를 해선 안 되는 인물이었다. 일본의 저명한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는 아베 총리를 열등감 덩어리로 묘사한다. 자신만 빼고 모두가 도쿄대를 나온 집안에서 자랐던 그가 유년시절 겪어야 했던 열등감과 컴플렉스가, 비정상적인 장기집권과 맞물려 이상한 자신감으로 표출됐다고 분석한다.
‘아베일강(安倍一強)’이란 단어에 축약되어 있듯 그의 주위에는 제대로 된 비판자들이 어느 샌가 사라졌다. 예스맨이 중용되고, 내각이 아닌 관저 및 관방, 즉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 중심의 정치가 대세를 이뤘다. 다이쇼 시대부터 계산해도 가장 오래 집권했다. 심지어 전두환보다 길다.
정권이 바뀔 기미가 안 보이니 메이저 언론들도 알아서 기는 손타쿠(忖度) 보도로 일관했고, 특종다운 특종은 죄다 슈칸분슌, 슈칸겐다이 같은 주간지들이 발표한다. 국회 질의에서 야당 중의원들이 주간지를 손에 들고 총리를 추궁하는 ‘웃픈’ 장면은 일상이 됐다. 모리토모 및 가케 학원 스캔들, 벚꽃모임 스캔들, 마스크 수의계약 스캔들, 검찰청법 개정 스캔들 등도 결국 그러한 장기집권에 따른 ‘삐뚤어진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사라져야만 일본이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일본의 지도자가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상대가 되어야 한일관계도 정상화될 수 있다. 물론 수출규제 및 강제징용노동자 문제도 해결된다. 사실 아베 총리는 행정부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참석한 국회답변에서도 “나는 입법부의 수장으로서…”라는 말실수를 태연히 할 정도로 삼권분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이런 사람에게 “한국의 대통령은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법원의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해봐야 소 귀에 경읽기가 아니겠는가. 산적해 있는 한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아베 총리가 물러나길 바란다.
어찌되었건 마지막 글이다. 2주에 한번, 원래는 ‘신일본, 신인류’라는 테마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3월부터 상황이 급변해 결국 코로나19 시대를 엉망으로 대처하는 일본사회 및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칼럼만 썼던 것을 이제서야 사과 드린다. 또 하나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은 뉴 노멀 시대의 선구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정말 민과 관이 합심해 탁월한 팀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조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여러분들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며, 언젠가는 I will be back!
박철현 작가
박철현 작가는 중앙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저널리스트를 비롯해 게임플래너, 술집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다 현재는 인테리어 업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네 명의 아이를 뒀다. 일본 생활 이야기를 담은 ‘일본 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 ‘어른은 어떻게 돼’ ‘이렇게 살아도 돼’ 같은 에세이를 냈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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