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국내외 정치사 ‘최초 여성’은 누구
공고했던 국회의 유리천장 하나가 깨졌습니다. 73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회부의장이 탄생하게 됐는데요. 더불어민주당은 25일 21대 국회 최다선(6선)인 박병석 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4선의 김상희 의원을 국회 부의장 후보로 각각 추대했죠. 김 의원은 “여성 부의장으로서 2020년을 ‘성평등 국회의 원년’으로 만들고 싶다”고 의미를 부여했어요.
우리나라는 16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30% 여성 할당제’가 생기면서 여성들이 국회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죠. 17대 국회 상임위에선 여성위원회를 제외하고 일반 상임위 중 최초로 문화관광위원장에 이미경, 정무위원장에 김희선 전 의원이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국회는 여성특위를 제외하고는 그 전까지 상임위원장 자리를 여성에게 내주지 않았죠.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도 여성 의원이 19%에 그칠 정도로 여전히 정치판은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어요. 20대 국회에서도 여성 상임위원장의 비율이 전반 6.25%(16개 중 1개), 후반 17.6%(17개 중 3개)에 불과했죠.
남성 독점이 이어지고 있는 정치권에서 여성 정치인이 제 목소리를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이들은 어떻게 치열한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최초의 역사를 쓴 여성 정치인들을 돌아봤습니다.
여성 의장들, 세계 무대에선 흔하다고?
사실 세계 정치사로 가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첫 번째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여성 의장들을 쉽게 볼 수 있거든요. 세계 국회의원 연합체인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연맹 소속 국회의장 278명 중 여성 의장은 57명(20.5%)에 달한다고 해요. 연맹 내 5개국 중 1개 나라 꼴로 여성 의장이 나온 건데요. 여전히 남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긴 해도, 이를 감안하면 한국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라고 볼 수 있죠.
2월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원고를 박박 찢어 책상 위에 던져버린 여성 하원의장 기억 나시나요. 이 대범한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미국의 첫 여성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의원인데요.
미국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2007~2011년 역사상 최초로 하원의장을 맡았죠. 그는 8년 만인 지난해 다시 등판해 두 번째 하원의장 임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펠로시는 취임사에서 “나는 여자지만 주먹을 어떻게 휘두르는가는 잘 알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셧다운 사태를 두고 치열한 대결을 예고하기도 했죠.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서도 여성 의장은 이미 있었습니다. 도이 다카코 전 중의원 의장은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사상 처음으로 여당 자민당의 집권을 저지했죠.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자민당의 아성을 무너뜨린 후 그는 “산이 움직였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3년 자민당 외 7개 당과 ‘비자민 연립정권’을 세워 호소카와 모리히코 내각을 출범시켰고, 여성 최초로 중의원 의장에 취임했어요.
그는 일본 정치권에서 여성들의 입지와 위상을 높이는데도 앞장섰는데요.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사회당 소속 여성 후보 11명을 당선시켜 이른바 ‘마돈나 열풍’을 일으켰어요. 2003년 도이를 이어 사민당 총재를 맡았던 후쿠시마 미즈호도 그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도이 칠드런’ 멤버였죠.
러시아는 2011년 처음으로 여성 상원의장을 맞았어요. 러시아 권력 서열 3위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입니다. 그는 푸틴 대통령 시절 부총리를, 2003~201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사를 지냈어요. 러시아의 역사상 여성이 이토록 높은 공직을 맡는 것은 처음이었죠. 이 때문에 그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견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임영신ㆍ박순천…한국 정치사의 맏언니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인식이 만연했던 1940년대, 지금보다 열악했던 여성 정치 불모지에서도 맹활약을 펼친 이들이 있습니다. 임영신·박순천 전 의원은 여성 정치사에서 늘 선두로 거론되고는 하죠.
우리나라 첫 여성 국회의원 임 전 의원은 1945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정당인 대한여자국민당을 창당해 4년 뒤 경북 안동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어요. 당시 일부 남성 공무원들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을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느냐”며 쑥덕거리자 그는 “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서서 오줌을 누는 사람 이상으로 활동했다. 내게 결재를 받으러 오기 싫은 사람은 사표 내라”고 호통쳤다고 합니다.
박순천 전 의원은 국내 최초로 5선을 지낸 여성 국회의원입니다. 그는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에 대한부인회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는데요. 박 전 의원은 여성의 인권과 법적 권리를 향상하는데 몰두했어요. 근로기준법 제정 때 60일 유급 산전ㆍ산후 휴가와 매달 1일의 유급 생리휴가를 제안해 통과시켰죠. 특히 여자만 처벌하던 간통죄를 남녀 모두 처벌하는 ‘쌍벌죄’로 개정할 것을 제안해 이를 통과시켰습니다.
김옥선 전 의원은 국내에서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나선 강단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3선의 김 전 의원은 짧은 머리에 양복과 넥타이까지 갖춰 남장을 하고 국회에 등원했어요. 1975년 10월 국회 질의에서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히틀러ㆍ스탈린’ ‘독재자’에 비유해 정국을 발칵 뒤집어놨죠. ‘국회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징계안에 회부되자 그는 결국 사퇴서를 던졌습니다. 이후 1992년 14대 대선 때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죠.
최초의 여성 부의장이 되는 김 의원은 “성평등 국회로 만들기 위해 성평등 의제가 뒤처지지 않도록 하고, 정치 영역에서 여성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소감을 밝혔죠. “유리천장을 깨고 싶었다”는 그는 국회에 또 다른 ‘여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제 남은 하나의 국회 유리천장, 국회의장의 자리는 언제 여성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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