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평야의 북측 익산의 지형은 대체로 순하다. 단단한 황토 덩어리를 나무망치로 부수어 놓은 것처럼 다소 투박하지만 특별히 높은 산이 없다. 함열읍을 중심으로 함라, 황등, 금마, 성당, 웅포 등 여러 면 단위 행정구역으로 쪼개져 있지만 험한 고개나 넓은 하천이 없어 외지인에겐 구분이 무의미하다.
익산의 대표 관광지 금마면의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인생사진’ 포인트를 따라간다. 미륵사지는 무왕(600~641년) 때에 창건한 백제 최대의 사찰이다. 미륵산(430m) 남측 자락에 3탑 3금당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지어졌지만, 현재는 서탑(국보 11호)과 당간지주 1쌍(보물 236호)만 옛 모습으로 남아 있고, 금당이 허물어진 터에 주춧돌이 보존돼 있다. 서탑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1993년 동탑을 복원했지만 ‘성형 미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20년간의 해체 보수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모습을 드러낸 서탑이 더욱 주목받는다.
인증사진도 대개 서탑을 배경으로 찍는다. 돌도 나이를 먹는다. 서탑은 63%가 원래의 석재를 그대로 사용했다. 전체 9층 중 6층까지만 남아 있어 절반이 부서진 모습이지만, 오래된 석재의 질감과 무게에서 풍기는 멋스러움에 자연스레 끌린다. 두 개의 탑 앞에 조성한 연못 주변까지 드넓은 잔디밭으로 조성해 소풍을 즐겨도 좋다.
미륵사지 서탑 복원에 맞춰 바로 옆에 국립익산박물관이 올해 초 개관했다. 절터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반지하 형태로 낮게 설계한 전시실에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동 사리장엄구와 금구슬 등 3,000여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인근의 익산 왕궁리유적은 미륵사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역사 유적이다. 마한시대 도읍 또는 백제 왕의 별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동서 245m, 남북 490m의 장방형 성터에 현재까지 14개의 건물이 있었음이 밝혀졌고, 정원과 화장실 흔적도 확인됐다. 곡선 수로를 복원해 놓은 것을 빼면 사실 비전문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다. 낮은 언덕에 홀로 서서 단순미를 뽐낸다. 탐방로 주변은 넓은 잔디밭이어서 하늘을 배경으로 선 탑이 더욱 도드라진다. 입구의 벚나무를 제외하면 그늘이 많지 않아 양산을 준비하면 좋겠다.
차로 10여분 거리의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2010년 드라마 ‘추노’(2010년)를 촬영한 곳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지역 주민들만 알음알음으로 찾는 잘 알려지지 않은 휴식처다. 왕대 북방한계선에 위치하는 이 대숲은 5만㎡로 국내 최대 규모다. 왕대보다 조금 가는 솜대가 섞여 있는데, 숲으로 들어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다. 오솔길처럼 여러 갈래로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고 쉴 수 있는 의자도 있지만,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게 흠이다.
성당면의 익산교도소세트장은 익산에서 가장 ‘핫한’ 인증사진 명소다. 원래 교도소였던 곳을 개조한 게 아니라 폐교한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를 교도소 세트로 꾸몄다는 사실이 조금은 당황스럽다.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가 300여편이니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국내의 영상물은 대부분 이곳에서 찍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건물 내부에 ‘양보는 미덕을 낳고 주먹은 후회를 낳을 뿐이다’ 등의 교화 문구가 걸려 있다. 철조망, 면회실, 독방 등은 실제 교도소를 그대로 재현했다. 감시탑으로 연결된 회색 담장에는 ‘도덕성 함양’이라 적혀 있다. 그 담장에 둘러싸인 잔디밭에서 인증사진을 찍거나, 쇠창살에 갇힌 죄수(인형)와 어깨동무를 하는 자체가 이색 경험이다. 죄수복이나 간수복 대여는 코로나19로 당분간 중단된 상태다. 촬영이 있는 날(홈페이지 공지)과 매주 월요일이 휴무이고 입장료는 없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충남 부여와 마주보고 있는 용안면의 성당포구 마을은 요즘 바람개비로 뜨는 곳이다. 제방 길을 따라 바람개비를 설치했을 뿐인데, 평온한 강 풍경과 어우러져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빨려 드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방 길은 생태습지공원과 이어져 한적하게 강 마을 정취를 즐길 수 있다.
함열읍의 ‘고스락’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더킹 : 영원한 군주’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주목받는 곳이다. 전통 장을 생산하는 업체인데, 3,500여개 항아리로 아기자기한 정원을 꾸몄다. 유기농을 원료로 한 간장ㆍ된장이 익어가는 항아리 사이로 오붓하게 걸을 수 있다. 사전에는 고스락을 ‘아주 위급한 때’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으뜸’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라 설명해 놓았다. 입장료는 없고 카페와 자체 매장을 운영한다.
익산=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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