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뼈빠지게 일해도 불로소득의 ‘금수저’ 건물주는 당해내지 못하는 현실. 토마 피케티(49)는 2013년 펴낸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크기 때문에 불평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이른바 ‘r > g’ 공식을 제시하며 단숨에 세계적 경제학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됐고,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후속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피케티 표 불평등 연구의 ‘끝판왕’ 격이다.
책은 프랑스혁명 이전부터 현대까지,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인도 브라질 동유럽 등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이데올로기’를 추적한다. 장장 1,300쪽 분량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 불평등은 자연스럽지도, 영구적이지도 않다는 것, 그러니 당연히 불평등은 줄여 나갈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변혁은 의외로 쉽게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서 일까. 피케티가 말하는 불평등 해결책은 도발적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허황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불평등한 세계에서 계속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한번쯤 귀 담아 들어볼 주장들이다.
◇불평등은 경제 아닌 정치적 결과
피케티의 핵심 메시지는 불평등은 경제 논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정치 세력의 문제라는 것. 첫 문장에 이 모든 문제의식이 압축돼 있다.
“어느 인간사회든 저마다의 불평등에 합당한 근거를 대야만 한다. 그러지 못할 때는 정치사회적 구성물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한다. 그래서 어느 시대든, 불평등이 존재하고 응당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구조화하는 일군의 모순된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피케티는 이를 ‘불평등주의체제’라 부른다. 대안을 제시한 마지막 17장을 제외하곤, 책의 각 부분마다 각 시대와 나라에서 불평등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구조화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들어간다.
피케티가 가장 공들여 분석한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시초는 근대 이전 유럽의 ‘삼원사회’다. 공동체 교육을 책임지는 종교 계급 ‘사제’, 사회 전체의 안위를 보장하는 귀족 계급 ‘전사’, 그리고 노동을 하며 세금을 내는 제3신분 ‘평민’으로 나눠진 사회다. 사제와 전사 계급은 노동도, 세금도 없이 평민 계급 위에 군림한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논리로 불평등을 강제하는 건 노예제 사회, 식민사회도 다를 바 없다. 현대 불평등 이데올로기로는 ‘소유자 사회’다. 사적 소유권을 사회 안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신성시하는 소유자 사회에선 신분이 아니라 부가 세습되고 자본가가 영웅이 된다.
◇고학력 좌파, 상인 우파 엘리트의 불평등 동맹
결론적으로 불평등을 없애려면 현실 정치를 바꿔야 한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 각국의 정치 권력과 선거를 분석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이는 건 그 때문이다. 피케티는 현대의 불평등이 고착화 된 데는 고학력 좌파, 상인 우파라는 다중엘리트들 연합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정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브라만 좌파는 학력, 지식, 인적 자본의 축적을 지향한다. 상인 우파는 무엇보다도 화폐 금융자본의 축적에 의거한다. 이들이 특정지점에서 분쟁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현행 경제체계와 경제금융 엘리트에게만큼이나 지식인 엘리트에게도 매우 큰 이득이 되는 현재의 세계화 양상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공유한다.”
다중엘리트체계는 앞서 언급한 ‘삼원구조’와 닮아 있다. 브라만 좌파는 사제 엘리트, 전통적으로 고소득을 점유한 상인 우파는 전사 엘리트에 비견될 수 있다. 실제 과거 노동자들의 정당이었던 미국의 민주당과 유럽의 사민당은 이제 고학력 엘리트들의 정당이 됐다.
학력도 자산도 소득도 높지 않은 평민들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우파 정당을 지지하며 이용당한다. 피케티는 좌파 정당이 불평등 정책을 쇄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탓에 불평등에 분노한 대중의 불만들이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등 정체성정치에 대한 열광으로 옮아가고 있다고 꼬집는다.
◇재분배를 위한 ‘사회적, 일시적 소유’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독자들이 기대하는 바는 사실 여기부터 일거다. 피케티는 전작에서 제시한 사회국가(복지국가), 누진소득세, 세계자본세 등을 좀 더 심화발전 시켜 ‘참여사회주의’라는 큰 밑그림을 내놓는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소련형 공산주의 모델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되, 사적 소유체계를 극복하자는 게 기본 전제다. 피케티는 ‘사회적 소유’와 ‘일시 소유’로 사적 소유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먼저 ‘사회적 소유’는 기업 차원에서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권력 분유를 지향하는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스웨덴의 노동자참가 제도 등이 거론되는 데, 한마디로 기업 경영에 노동자들의 참여를 강화해 불평등을 극복하자는 거다.
‘일시 소유’는 보다 영구적인 재분배 시도와 맞닿아 있다. 피케티는 재산세나 토지세 같은 사적 소유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누진소유세로 통합해 이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주자고 말한다. 보편적 자본지원을 통해 사적 소유를 ‘사회적 관계로서의 사적 소유’로 전면화하자는 것.
구체적으로 피케티는 만 25세 청년에게 유럽 성인 평균 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약 1억6,000만 원)를 기초자산으로 주자고도 제안한다. 이렇게 할 경우 ‘개별적이고 차별적인 부의 대물림’이 ‘평등하고 사회적인 상속’으로 바뀌면서 재산과 부는 지속적으로 순환하고, 불평등은 완화될 수 있다는 게 피케티의 주장이다. 정의당이 추진하고 나선 ‘청년 기본 자산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당장 내가 노력해서 또는 내 능력이 뛰어나서 일군 부를 왜 나눠줘야 하냐는 반발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이 세상에 온전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진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재화의 축적은 언제나 사회적 과정의 결실이며, 이는 공적 기간 체계(특히 법, 조세, 교육, 제도), 사회적 분업, 수세기 동안 인류가 쌓아온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 피케티는 일시적인 소유야말로 정당하며, 정의로운 소유라고 일갈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지음ㆍ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1,300쪽ㆍ3만8,000원
◇전 지구적 평등 연대 ‘사회연방주의’
정치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피케티는, 좌파 진영에 대해서도 각성을 촉구한다. 난민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 인종과 민족에 근거한 정체성주의 유혹 앞에서 좌파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피케티는 극우 우파에 맞설 좌파의 전략적 대응으로 초민족적, 전지구적 사회연방주의를 제안한다. 이민, 민족, 종교 등 국경(경계)을 둘러싼 균열과 이로 인한 비극들을 평등주의적 연대로 묶어내자는 거다. 피케티는 모든 평민 계급의 불평등 완화에 맞서기 위해 좌파 진영이 국가 단위를 넘어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세계 차원의 금융등기부 작성 등은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다.
방향은 알겠는데, 현실성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피케티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르몽드지에 보낸 긴급 기고문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이번 위기는 전 세계의 가장 부유한 경제 행위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전 세계가 나눠 가질 보편적 권리에 따라 재원을 마련해 세계 주민들의 공공보건 및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을 고려해볼 수 있는 기회다. 중대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격변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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