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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의 멍멍, 꿀꿀, 어흥] 주위를 유심히 봐라, 감염병 진짜 원인은 동물이 아니다

입력
2020.06.06 09:00
수정
2020.06.06 09: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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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자카르타 도심 자티네가라 동물 시장에서 사향고양이 두 마리가 철창 우리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작권 한국일보] 자카르타 도심 자티네가라 동물 시장에서 사향고양이 두 마리가 철창 우리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봉된 지 9년이나 된 영화가 뒤늦게 온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스티브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작 ‘컨테이젼’. ‘감염(Contagion)’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첫 화면이 뜨기 전, 한 여성의 심한 기침 소리로 시작한다. 그녀(기네스 펠트로)는 홍콩에 출장을 갔다가 호흡기 질환에 걸린 채 비행기를 타고 미국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허망하게 죽어버린다. 어린 아들도 엄마에게 전염되어 죽는다. 남편(맷 데이먼)과 딸은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영화는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가 되는 물컵, 핸드폰, 버스 손잡이, 서류 등을 클로즈업하고, 비행기로 촘촘히 연결된 세계화 속에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지는 ‘전염병의 세계화’를 보여준다. 병상 부족으로 체육관을 급히 병동으로 삼고, 이동이 통제되고, 도시의 시민들이 고립되면서 사회 혼란이 극도로 커지는 모습,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 격리 생활까지. 영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지금, 우리’의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이 영화를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는, 단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의 공포를 밀도 있게 묘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소더버그 감독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팬데믹의 원인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기네스 펠트로가 일하는 다국적 기업이 아시아의 어느 열대우림을 불도저로 밀어 개발하고 그 숲에 살던 박쥐가 인근의 양돈농장에 날아 들어간다. 박쥐가 먹던 과일을 돼지가 먹고, 그 돼지가 식당으로 팔려가고, 기네스 펠트로는 출장 중 그 식당에서 식사한다. 서식지 파괴로 야생동물들이 인간 거주지로 가까이 오고, 가축과 접촉하고, 가축이 매개가 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이되는 연결고리.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03년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2014년 에볼라, ‘중동판 사스’로 불린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이번 코로나19 등 21세기 주요 감염병의 감염원은 박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박쥐가 아니다. 인간은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해 도로를 내고, 공항을 짓고, 리조트와 아파트를 짓고 있다. 어느 날 뭔가 푸드덕거려 자세히 보니 박쥐들이 집에 들어와 있어 경악했다는 경기도 어느 아파트 주민의 이야기는 사실 박쥐 입장에서 보면 정반대의 서사가 된다. 박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숲이 사라지고 우리가 살던 집도 없어지고 털 없는 유인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너무 놀랐어.’

박쥐의 바이러스는 중간에 매개가 되는 동물을 타고 인간에게 넘어온다. 사스는 박쥐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를 타고 인간에게, 메르스는 박쥐 바이러스가 낙타를 타고 인간에게 넘어왔다고 알려졌다. 코로나19는 박쥐의 바이러스가 천산갑 또는 다른 동물을 타고 인간에게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생태계 파괴를 멈추고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매개 동물들과의 접점을 줄이는 것이 앞으로 나타날 또 다른 인수공통전염병을 막는 길이라는 점이다.

다행히도 중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교훈 삼아 야생동물 식용을 전면 금지했다. 한국도 뱀, 박쥐, 천산갑, 너구리, 오소리, 사향고양이의 수입을 완전 차단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령안이 27일부터 시행됐다. 사후약방문이지만 잘된 일이다. 그런데 관람객들이 라쿤, 코아티 등을 만지고 먹이를 주는 야생동물 카페, 도마뱀, 거북, 심지어 과일박쥐 등을 유치원, 학교에 데리고 다니며 어린이들이 만져보게 하는 이동식 동물원이 여전히 도심 한복판에서 영업 중이다. 그런가 하면, 수많은 가축을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사육 시스템은 바이러스의 변이와 전파를 쉽게 하는 최적의 조건이다. 우리는 언제든 또 다른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다.

황윤 (영화감독, ‘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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