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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만든 줄…” 日 조롱하는 ‘디스이즈어펜’ 광고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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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만든 줄…” 日 조롱하는 ‘디스이즈어펜’ 광고 알고보니

입력
2020.05.28 14:32
수정
2020.05.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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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What] 일본 조롱하는 삼성 노트북ㆍ태블릿 광고 눈길

삼성 광고 아닌데… 온라인에서 “수출 규제 때문” 추측까지

한 전자기기 리셀러샵에서 만든 삼성 태블릿PC 관련 이벤트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전자기기 리셀러샵에서 만든 삼성 태블릿PC 관련 이벤트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일본을 조롱하는 소재를 이용한 삼성전자 노트북ㆍ태블릿 광고가 국내 반일 정서를 타고 28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이 광고를 담은 게시물들은 ‘삼성 일본시장 포기’, ‘삼성 광고 근황’, ‘이 와중에 삼성의 노트북 마케팅’, ‘일본을 쥐어 패고 있는 삼성 광고’ 등의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떤 광고이기에 이렇듯 화제가 된 것일까요? 한 태블릿PC 광고에는 “디스 이즈 어 펜(This is a pen)이 탑재된 삼성 태블릿 한정수량 특가”라는 문구를 넣어 터치펜을 포함한 제품을 홍보했는데요. 이는 21일 일본 지상파 방송사 TBS의 시사프로그램 ‘히루오비’가 벌인 실험을 풍자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 방송에서는 얼굴 앞에 휴지를 대고 실험자에게 ‘이것은 펜입니다’를 일본어 “고레와 펜데스”, 영어 “디스 이즈 어 펜”으로 각기 발음하게 한 뒤 휴지가 펄럭이는 정도를 측정했는데요. 방송은 영어로 말할 때 휴지가 더 펄럭였다며 “일본어가 영어보다 침이 덜 튀는데, 이것이 미국보다 일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적은 이유”라고 주장했죠.

이 방송 내용이 알려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이어졌어요. 애초에 ‘펜’이라는 부분은 영어나 일본어나 발음이 똑같은데, 실험자가 영어로 발음할 때 유독 과장해서 말하면서 일본어를 돋보이게 하려 했다는 겁니다. 이에 심지어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이 실험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는 ‘#This is a pen’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죠.

한 전자기기 리셀러샵에서 만든 삼성 노트북 관련 이벤트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전자기기 리셀러샵에서 만든 삼성 노트북 관련 이벤트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다른 광고의 소재 또한 일본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노트북 광고에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한 삼성전자 여름 신제품 노트북 특가 기획전”, “2020년 제품은 신제품이란 뜻입니다”라는 문장이 쓰였습니다. 이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일본 환경장관의 독특한 화법을 희화화 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郞) 전 일본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장관은 ‘포스트 아베’, ‘정계의 프린스’ 등으로 불리며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기도 했던 인물이죠.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듯한 엉뚱한 화법에 일본 국민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온라인에서는 그의 어록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밈’(memeㆍ모방의 대상이 되는 유행요소)이 돼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어요.

고이즈미 장관은 지난해 9월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석해 ‘기후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답하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후 ‘그것이 어떤 대처냐’는 물음에 “그것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 광고는 고이즈미 장관의 이 답변을 변용한 것입니다. 신제품에 관한 부분도 “경기가 좋아지면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 등 결과적으로 같은 뜻의 말을 표현만 바꿔 의미 없이 반복하는 특유의 어법을 따라 한 것이지요. 이 광고를 두고 “특가는 싸게 판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일(Sale)이니까”(웬****), “가격을 표시하는 것은 섹시하지 않군요”(무****) 등의 또 다른 패러디도 나오고 있는데요.

한 전자기기 리셀러샵의 삼성 전자기기 관련 이벤트 광고 원문. I사 홈페이지 캡처
한 전자기기 리셀러샵의 삼성 전자기기 관련 이벤트 광고 원문. I사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에서는 “삼성 마케팅 팀이 센스가 있다”(소****), “삼성이 왜 이런 밈을 주워서 쓰는지 이해가 안 간다”(M****), “수출도발 건으로 일본 소재업체들이 완전히 삼성전자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용****) 등 이 광고를 만든 주체가 삼성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정말 삼성이 만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기정사실화하는 누리꾼들도 있었는데요.

정말 언뜻 보면 삼성에서 만든 광고처럼 보입니다. 상단에는 삼성의 로고까지 박혀있어 더욱 헷갈리죠. 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자사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특정 국가, 혹은 특정 정치인을 겨냥하고 조롱하는 조의 광고를 제작했다니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데요.

사실 이 광고들은 각 브랜드 전자기기를 구입해 다시 판매하는, 용산에 위치한 이른바 ‘리셀러샵’의 할인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판매업체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광고 원문에는 해당 업체의 상호 등이 명시돼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삼성 로고와 제품이 언급된 부분만 편집돼 확산되면서 생긴 오해인 셈이죠.

혹시 이 모든 것이 ‘노이즈 마케팅’ 전략에서 마련한 업체의 큰 그림이었을까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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