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
남아공 수의대 진학 계획, 반려견 죽음에 ‘급반전’
비구협 창립해 애린원 철거 등 대형이슈 주도
“사회 전체가 동물실험 제품 사용 줄이고
실험동물 입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유엔(UN)이 정한 '세계 실험동물의 날(매년 4월24일)’을 하루 앞둔 23일. 서울대병원 한 연구팀이 비윤리적인 고양이 동물실험을 했다는 내용이 폭로됐다. 청력 훼손이 동반되는 실험에 동원된 고양이 6마리가 실험 이후 마취 없이 고통 속에 안락사됐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가 해당 연구팀 교수를 고발하면서, 사법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전 대표의 비밀 안락사 지시와 '유기견 지옥'이라 불리던 애린원 철거, 그리고 실험견 메이 사건까지. 비구협은 지난해 국내 동물이슈 중 가장 이목을 끈 사건들을 세간에 처음 알린 단체다. 지난 2015년 11월 창립해 5년이 채 안된데다, 규모 또한 크지 않은 단체가 이룬 성과라 더 놀랍다. 유영재(55) 비구협 대표는 “우리가 그들을 구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들의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비글과 시작한 새로운 삶
국내 신생 동물단체는 보통 기존 1세대 단체 활동가들이 새로운 비전을 갖고 따로 활동을 시작하며 탄생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유 대표 행보는 독특하다. 비글에 대해 아는 건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 탓에 반려인들에게 ‘악마견’으로 불리고, 유명 캐릭터 ‘스누피’의 모델이란 정도인 시절.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비글이 실험견으로 쓰이는지조차 몰랐던 순수 반려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곁에 항상 강아지 2~3마리가 함께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1984년) 후부터 제 개를 따로 키워도 될 만큼, 집안 전체가 반려견을 좋아했습니다.”
미국유학을 거쳐 무역업에 종사하며 미국과 네덜란드 등 해외 이곳 저곳에서 지냈다. 그렇게 경쟁하며 바쁘게 살던 40대 중반 어느 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쉰 살부터 아프리카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며 여생을 빅캣(사자, 표범 등 고양잇과의 대형포유류) 구조활동으로 사회봉사를 한다는 그림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수의대에서 입학허가서도 받는 등 준비는 순조로웠다. 모든 채비를 끝내고, 당시 키우던 한양이(코카스파니엘 품종)와 함께 떠날 날만 기다렸다. 그때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택시에 치여 짧은 1년반 생을 마감한 한양이. 장애가 있어도 좋으니 살아만 달라는 애원은 하늘에 닿지 않았다. 슬픔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았고, 홀로 떠날 용기도 나지 않았다. 한양이와 함께 아프리카 생활도 가슴에 묻었다. “지금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제 아이디가 ‘한양이’ 입니다.”
한양이를 보낸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우연히 온라인카페를 통해 알게 된 장애견 ‘햇살이’를 입양했다. 비글이었다. 장애가 있어도 좋으니 살아만 달라는 애원이 다른 모습으로 이뤄진 것 같았다. 비글이 실험동물로 사용된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이후 개인 구조활동을 하며 실험 비글 4마리를 구했다. 3년간 실험견 생활 후에도 가정에 입양되지 못한 채 보호소에서 7년을 더 지낸 친구들이었다. 사람을 위해 희생한 동물들이 남은 날들마저 편히 보내지 못한다는 데 화가 났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입양처를 찾을 수가 없어 미국으로 보내야만 했다. 국내에 이런 일이 왜 계속 되나 보니 사람들이 실험동물 실체를 몰라서라고 결론 내렸다. 사회에 실험동물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11월 실험 비글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 구조하는 비구협은 그렇게 창단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지난 4월 20일 실험 비글 29마리가 비구협 논산쉼터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실험동물이 안락사 없이 한꺼번에 사회로 나오는 최대 규모였죠. 실험 기관에서 개들을 순순히 보내주는 경우가 많지 않아 활동 초기 실험 비글 1마리 얻기 힘들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실험동물에 대한 사회인식도 달라지고, 단체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애린원, 안락사 그리고 실험 비글 ‘메이’
“국내 동물단체 사람들 중에 애린원에 봉사활동 한 번 안 가본 이가 있을까요?” 철거 당시 유기견만 약 1,600마리였던 국내 최대 사설 유기견보호소 ‘애린원’.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이 보호소 내 개들은 그대로 방치돼 분변과 사체에 뒤섞여 전염병 속에 하루하루를 지냈다. 중성화도 이뤄지지 않아 새 생명은 계속 태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모두 문제라 인식했지만 손대지 못한 곳. 애린원 관계자들의 배째라식 태도와 철거 후 많은 유기견을 한꺼번에 돌봐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문제였다.
유 대표는 지난 2016년 포천시 유기·유실동물 공고에 난 유기 비글 2마리를 비구협에 데리고 오려 했다. 하지만 공고 기간이 끝나기 전 이미 애린원에 들어와 있었다. 포천시 유기동물 위탁기관인 한 동물병원이 시에서 마리당 10만원씩 수탁비용을 받고도 개는 보호하지 않고 애린원으로 보냈던 것이다. 여기에 애린원 원장의 후원금 유용 의혹까지 겹치는 등 애린원은 이미 통제불능이었다.
애린원 사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애린원이 불법 점유한 토지 소유주와 임대계약을 정식 체결 후 법원으로부터 애린원의 강제철거 명령을 받아냈다. 그리고 지난해 9월25일 애린원의 강제철거가 이뤄졌다. 애린원의 비정상적인 운영에 피해보는 유기견들을 구조키로 하고 일을 진행한 지 꼬박 3년이 넘게 걸렸다. “이미 200마리 가량 입양을 보냈지만, 그래도 1,000마리가 넘는 친구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이들을 분산 수용하기 위해 충북 보은군에 별도 쉼터를 마련 중입니다.”
지난해 비구협 폭로로 시작된 케어 박 전 대표 사건 역시 애린원 철거만큼이나 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구조 동물을 대상으로 한 안락사는 절대 없다던 동물보호단체 대표가 구조동물 수용공간이 부족하다며 201마리의 안락사를 지시하고 시행한 사실은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현재 유 대표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 중인 박 전 대표가 제대로 된 법적 평가를 받도록 하고, 비구협을 믿고 내부고발에 나선 이를 보호하는 데 힘을 쏟고 했다. “동물보호 활동을 하기 전까지 누구를 고소하고 고발한 적이 없는데, 계속 이런 일을 하게 되네요.”
비구협 본래 업무인 실험동물 복지와 관련해서도 그는 지난해 실험 비글 ‘메이’ 사건을 폭로했다. 메이는 2013년부터 5년간 인천공항에서 검역탐지견으로 일한 후 서울대 수의대에서 실험견으로 쓰이다 실험견 생활 8개월만인 지난해 2월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메이 실험을 주도한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역시 고발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비구협을 탄생케 한 미국 입양 비글부터 메이와 고양이에 대한 비윤리적 실험까지. 과거보다 상황이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인간을 위해 한평생 바친 실험 동물들이 학대 금지 등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변화시킬 방법은 무얼까.
유 대표는 실험 동물의 가해자가 ‘우리’라는 말로 대신했다. 사회 전체가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 사용을 줄인다면 그만큼 동물 실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는 실험 동물 수요 자체를 줄이는 방법과 함께 현재 실험에 동원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데려온 실험 비글을 사회화 교육하고 잘 보호하는 건 자신 있어요. 그런데 입양이란 건 우리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실험견 시절을 마치고 나온 친구들에게 남은 생은 일반 가정에서 편히 보내게 해주는 정도의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주는 게 우리 모두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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