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가 필요해요, 우유!”
경찰이 쏜 최루액을 얼굴에 뒤집어쓴 청년이 괴로워하며 소리치자 근처에 있던 시위대가 재빨리 다가가 그의 얼굴에 우유를 뿌렸다. 3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열린 ‘흑인 사망’ 항의 시위 도중 일어난 일이다.
지난 25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숨지는 사건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났다. 이에 대한 격렬한 항의시위가 닷새째 이어지며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거나 근거리에서 페퍼 스프레이(분사 최루액)를 무자비하게 뿌려댔다.
급박한 시위 현장을 기록한 수만 장의 외신 사진 중엔 괴로운 표정으로 얼굴에 우유를 뒤집어쓴 시위대의 모습이 적지 않다. 모두 경찰의 기습적인 최루액 분사에 당한 이들이 얼굴에 묻은 최루액을 급하게 씻어내는 장면이다. 시위대는 경찰의 이 같은 최루액 분사에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얼굴을 노린 최루액 분사를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우유를 대용량 용기째 사 들고 오거나 물통 또는 텀블러, 분무기 등에 미리 우유를 담아 와 응급 처치에 활용했다.
주로 가까운 거리에서 분사하는 최루액은 얼굴에 맞는 순간 호흡곤란과 함께 피부에 염산 테러를 당한 듯한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 남성이라도 1분 이상 무력화되며 경우에 따라 몇 시간 동안 통증이 지속되기도 한다. 이 같은 효과 덕분에 호신용품으로 인기가 많다. 경찰이 과격 시위 진압용으로 사용하는 페퍼 스프레이는 호신용보다 용량이 더 크고 분사력도 강력하다.
그렇다면 시위대는 최루액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왜 우유를 들이붓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최루액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에 있다. 캡사이신은 지용성 즉, 기름에 녹기 때문에 물로는 잘 씻기지 않는다. 따라서 유지방이 들어 있는 우유로 조심스럽게 닦아낼 경우 물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한 호신용 페퍼 스프레이 판매업체의 제품 사용상 주의사항에 따르면, 최루액이 피부에 닿았을 경우 접촉 부위에 우유를 살짝 뿌린 후 수건에 우유를 적셔 덮어 주면 피부의 화끈거리는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페퍼 스프레이에 포함된 오일은 우유로 제거되지 않는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선 통증이 완화한 후 식기용 세제와 물로 접촉 부위를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또한, 최루액이 눈에 들어간 경우 즉시 찬물로 씻어야 하고 눈을 깜박여 눈물을 흘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같은 호신용 페퍼 스프레이 주의사항이 시위대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각지의 시위 현장마다 우유가 응급처치용으로 뿌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적인 집회로 시작된 흑인 사망 시위는 현재 미네소타주는 물론 워싱턴 DC와 뉴욕시 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했고 일부에선 폭력과 방화, 약탈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는 등 시위가 격화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군 투입도 시사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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