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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다른 생각] 히포크라테스가 하고 싶었던 말

입력
2020.06.01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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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이동형 선별진료소에서 잠시 휴식 중인 의료진들.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이동형 선별진료소에서 잠시 휴식 중인 의료진들. 연합뉴스

학문과 예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각 분야에서 단단한 기초를 닦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을 가리켜 흔히 그 분야의 ‘아버지‘라고 부르곤 한다. 이를테면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요 기하학의 아버지는 유클리드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를 의학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 자신은 다소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 바흐 이전에도 음악은 있었고 유클리드 이전에도 기하학은 있었다. 이들의 업적은 이전의 성과를 집대성하고 그것을 탁월한 종합으로 발전시켜 나간 데에 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의 경우 그 이전에는 의학이라 부를만한 것이 실제로 거의 없어서, 그가 의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처음부터 만들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그러니 그는 무엇을 빼고 더할 것 없이 말 그대로 의학의 아버지인 셈이다.

의학은 히포크라테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가 주술과 종교의 틀 안에 있었던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를 경험과학의 영역으로 이끌어 독립적인 학문으로서의 의학의 기초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와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다. 기원전 5세기의 학문적 성취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활약은 놀랍다. 그는 오늘날 터키 남쪽 앞바다의 코스라는 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주로 지냈지만, 그의 권위는 당대의 고대 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널리 퍼져나갔다. 예를 들어 그보다 불과 30년 정도 뒤에 태어난 플라톤은 이미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된 학문의 권위자로 히포크라테스를 칭송한 바 있다.

그의 놀라운 학문적 성취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남긴 다음의 두 문장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지혜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배움은 길며, 기회는 빠르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 의사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환자와 조수, 그리고 다른 이들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며 한탄조로 이야기하는 문장의 출처가 여기이다. 예술보다는 의술이, 의술보다는 배움이 그 본래 뜻을 잘 드러낸다.

히포크라테스의 첫 번째 문장은 우리의 유한한 실존을 묘사한다.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은데, 배움의 길은 끝이 없고 확실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여러 질병의 양상들을 접하고 관찰했던 고대의 히포크라테스가 느꼈을 법한 무력감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첨단의 장비들을 무수히 갖춘 현대의 병원에서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질병들이 의료인들을 절망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의 두 번째 문장은 그 무기력과 절망에 대한 담담한 해결을 말하고 있다. 즉 다른 이들과의 협력이 그것이다. 타인들과 소통을 통한 협력은 제한적인 인식만이 허용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허락되어 있는 유일한 탈출 수단이다. 여기서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자라기보다는 철학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가 되는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저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같이 읽고 그 뜻을 새긴다. 지금은 오늘날의 문맥에서 많이 수정된 선서문을 사용하지만,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원래의 선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비롯한 모든 남신들과 여신들을 증언자들로 삼아,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다음의 선서와 서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한다.” 이렇게 서두에 여러 신들을 열거하는 것은 고대의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법이다. 이는 말하는 주체의 기원 혹은 족보를 상기시킴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아폴론의 아들이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이고, 히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는 그의 딸이다. 히포크라테스 자신은 물론이고 지금 엄숙하게 선서에 임하는 이 의사 후보자는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 가문의 후손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게 선포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의사 후예들이 신들의 자손이라는 말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플리니우스가 다음의 문장에서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돕는 일은 신적인 것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간은 같은 운명을 지닌 동료를 도움으로써 그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난다. 히포크라테스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우리의 한계와 유약함을 이겨내는 일은 오직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베품으로써만 가능하다. 유한한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손을 내밀면서 자신의 유한성으로부터 탈출을 시작한다.

의학은 여기서 민주주의와 만난다. 민주주의 또한 우리 모두가 매우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정치적 진리만을 소유하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소통과 협력으로 그 한계를 돌파하는 일, 그것이 의학과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놀라운 싸움을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의료인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의학의 성장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의학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김수영 철학박사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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