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흑인 남성이 숨진 사건을 두고 시위대와 공권력 간 충돌이 미국 전역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군 병력 투입 등 강경진압을 시사하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경찰 내부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매일 이어지는 폭력시위와 강경진압 현장에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할 의사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자치경찰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각 주ㆍ도시마다 별도의 경찰 기관이 존재하는데, 일부 지역의 경찰 수뇌부는 직접 현장에서 시위대와 교감했다. 테렌스 모나한 뉴욕시 경찰청장이 1일 행진 중인 군중 속으로 들어가 시위대와 포옹을 나눴는데, 이틀 전 소속 경찰관들이 순찰차를 몰고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사건이 벌어진 만큼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멜빈 싱글턴 필라델피아 경찰국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료 경찰에게 시위대 지지를 독려했다. 시경 청사 앞에 운집한 시위대 편에서 경비 근무 중인 경찰관들에게 함께 ‘무릎을 꿇을 것(흑인 인권을 상징하는 행위)’을 강력히 제안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시와 유서 깊은 도시 필라델피아의 경찰 고위 간부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시위대 내부에서도 지나친 폭력 시위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경찰이나 정부 기관을 향한 폭력은 저항권 행사로 볼 수 있지만 이와 무관한 민간인까지 대규모 약탈 피해를 당하면서 문제 제기가 시작된 것이다. 시위대가 비폭력 노선을 고수하자 이들과 대치하던 경찰 역시 무장을 내려놓는 것으로 화답한 경우도 있었다.
경찰과 시위대 양 진영 모두에서 이와 같은 평화의 바람이 솟고 있지만 아직 사태 종결은 요원하다. 강경진압 원칙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수도 워싱턴DC에서는 격렬한 무력충돌이 계속됐다.
오후 7시 이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온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육군 헬기가 동원되기도 했다. 도시 중심가 상공을 저고도로 비행하며 강한 바람과 먼지를 일으키는 방법으로, 시위대에게 추가 전력 투입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종의 ‘무력시위’이기도 하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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