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교수 “국립보건원 복지부 산하기관 시대착오적” 작심 비판
청와대에도 ‘질본 청 승격, 제대로 해야’ 국민청원
복지부 “국립보건원, 감염병 관련 연구만 하는 것 아냐” 해명에
산하기관 가지려는 공무원조직의 ‘부처 이기주의’ 지적도
질병관리본부(질본)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을 골자로 3일 발표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현재 질본 산하 국립보건연구원(국립보건원)을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한다는 개편안이 적절한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질본을 청으로 승격해 독립성과 책임성을 부여하면서도 감염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에 대한 연구ㆍ개발(R&D) 기능은 복지부가 관리한다는 것을 두고 시대착오적인데다 부처 이기주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논란은 4일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면서 가열됐다. 그는 정부가 질본을 청으로 승격시키는 대신 산하 국립보건원의 감염병연구센터를 확대 개편해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신설하되, 국립보건원을 복지부로 이관한다고 밝힌 점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 교수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런 조직 개편은 하나마나 한 것이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감염병과 만성질환 등과 관련한 기초ㆍ실험연구 등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 기관이 복지부 산하로 이관되면 본래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국립보건원이 감염병과 관련한 연구만 하는 게 아니며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한 기술ㆍ제품 개발, 유전체 빅데이터 사업, 재생의료사업(줄기세포) 등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국가 차원의 R&D가 필요한 만큼 복지부 산하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국립보건원(NIH)이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격인 보건부(DHHS) 산하에 병립해 있는 등 국제적으로도 방역과 방역 연구기능이 분리돼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국제적 추세에 맞추고, 바이오헬스산업 전반의 기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역시 잘못된 판단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립보건원은 기초ㆍ실험연구에 특화된 조직”이라며 “이런 조직을 복지부로 이관시켜 바이오헬스산업과 관련된 연구를 맡기는 것은 그 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억지로 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간 정부는 질본에 관심도 없었고 지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청으로 승격시키는 대신 산하 기관을 통째로 가져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이 전형적인 ‘부처 이기주의’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위상이 높아진 질본에 독립적인 예산권과 인사권을 주는 형식을 취하면서 이면에는 연구ㆍ개발 기능을 공무원 조직에 두면서 통제력을 높이려 한다는 게 골자다. 이 교수는 “지금도 질본 국장과 과장자리는 복지부 인사 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행시 출신 인사들을 내려 보내는 악습이 이뤄지고 있다”며 “국립보건원, 국립감염병연구소 등의 기관을 복지부로 이관하면 연구와 아무 관계없는 인사들이 조직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정 본부장은 “질본이 청이 되더라도 역학적인 연구, 감염병 퇴치 예방 등 연구기능이 필요하고 이와 관련한 정책을 평가하는 조직과 인력을 확대하려고 한다”며 “(국립보건원에서 하는) 기초 백신ㆍ치료제 개발연구와는 조금은 성격이 다른 공중보건연구의 조직과 인력을 확대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와 계속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립보건원이 복지부 산하로 가더라도 다른 연구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의미다. 당초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은 정 본부장이 아닌 권준욱 보건연구원장이 맡을 계획이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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