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 한국이란 무엇인가] <13>내재적 발전론과 한국학 ※‘칼럼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한국의 정체성, 역사, 정치, 사상, 문화 등 한국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찾아 나섭니다. ‘한국일보’에 3주 간격으로 월요일에 글을 씁니다.
다가오는 14일은 막스 베버가 지구라는 행성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막스 베버는 현대 사회과학의 초석을 놓은 학자다. 그의 견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막스 베버가 남긴 지적 유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과학자나 역사학자는 많지 않다. 칼 마르크스가 그러한 것처럼, 막스 베버 역시 한국 연구와 결코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한국과 관련하여 막스 베버를 생각하자면, 먼저 ‘숨은 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윤해동은 “‘숨은 神’을 비판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적인 글을 발표했다. 그 글은 20세기 후반기 이래 한국학의 주류 사조라고 할 수 있는 ‘내재적 발전론’과 그 주인공 김용섭의 학문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윤해동이 보기에, 한국이 근대화할 수 있는 내재적 역량을 조선 후기부터 갖추고 있었다는 취지의 내재적 발전론은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완벽하게 무시돼 왔으며, 이런 방식을 통해 그의 논리는 유지돼 왔다.” 내재적 발전론은 성역화됐고, 김용섭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숨은 신’이라는 것이다.
한국학계에서 내재적 발전론이 그토록 성행한 것은, 그것이 일본 식민사학에 대한 반박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일찍이 한국 역사와 문화는 중국 문명에 의존적이었다는 점에서 타율적이며, 자생적인 근대화 역량이 없었기에 정체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일본이 한국에 개입할 때야 비로소 한국은 그 정체된 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분 나쁘지 않은가. 나는 계속 정체돼 있었고, 남의 도움 없이는 발전하기 힘들다니. 그런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분을 가지고 학문을 할 수는 없다.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나름대로 경험적 증거를 들이대어 가며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제시했기에, 제대로 반박하려면 그에 맞설 수 있는 충분한 경험적 근거와 이론적 틀이 있어야 한다. 기분 나빠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학술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일이다. 바로 그 힘든 일을 해낸 대표적 인물이 역사학자 김용섭이다. 김용섭은 규장각에 들어앉아 토지대장을 비롯한 여러 사료를 분석한 끝에 ‘경영형 부농’ 개념(1970)을 제출한다. 그 연구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고무적인 것이었는지는 문학사가 고 김윤식의 회고로부터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토지를 다 받아서 그걸 합리적으로 경영했는데, 그것이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이었다 하는 것이 이 사람(김용섭 교수) 연구에 드러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책(‘조선후기농업사연구’)이 출판됐을 때, 우리가 얼마나 흥분했느냔 말이야. 김현이라는 불문학 하는 친구하고 둘이서 또, 그때는 우리가 신용하니 안병직이니 해서 만날 밤에 토론하고 그랬습니다만, 이 때문에 우리 대단히 흥분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김현씨하고 둘이서 ‘문학사를 쓰자’ 해서 썼어요. (중략) 인문학의 사명이 식민사관 극복이었어요. 국가적인 사명이었단 말이에요.”
김용섭 연구의 영향은 단지 국문학뿐 아니라 한국학 제반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제사에서는 자본주의 맹아론이, 사회사에서는 신분변동론이, 정치사에서는 붕당정치론이, 사상사 분야에서는 실학 연구가 주목 받았다. 이러한 연구들이 일제히 식민사관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당사자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 연구들은 구 소련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식화한 역사발전 도식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어느덧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자라났다. 영어권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꾸준히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해외 한국학 연구의 주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에드워드 와그너, 제임스 팔레, 카터 에커트, 존 던컨은 모두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이영훈과 미야지마 히로시가 소농사회론을 제기했다. 그들에 따르면, 경영형 부농이 아니라 소농이 조선 후기 사회를 특징짓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재적 발전론이 한국학계의 비주류가 된 것은 아니다. 내재적 발전론자들이 후속 세대를 비슷하게 재생산하는 한, 신은 여전히 신으로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내재적 발전론이 문제가 있다는 풍문이 퍼져나가면서, 한국학의 신은 더 이상 숨은 신이 아니게끔 됐다.
그러나 세상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 2017년에 출간된 ‘농업으로 본 한국통사’를 보면, 김용섭은 여전히 자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내재적 발전론 비판자들이 식민사학과 비슷하다고 몰아세웠다. 조선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었다는 취지의 내재적 발전론을 감히 비판하다니, 기분 나쁘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많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통사, 역사 교과서, 저널리즘에는 여전히 민족주의 담론이 우세하다. 논문에서는 명시적으로 민족주의 사학을 비판했던 이도, 대중을 위한 역사서에서는 민족주의적 담론을 버젓이 채택하곤 한다.
한국 주류학계는 해외 한국학계나 이영훈이 제기한 비판이 가진 실증적 난점과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종종 지적한다. 보수 우파와 해외 한국학 연구의 비판이 부당하다고 느끼는가. 그러나 그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비판에 공간을 내어 준 책임은 부분적으로 한국 주류학계에 있다. 한국 학계가 내재적 발전론을 대신할 만한 정교한 내러티브를 제시하지 못했기에, 그러한 담론이 비등한 공간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보수 우파의 해석이 근래 한국학계의 미시적 연구성과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정도의 지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수 우파가 주로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그 미시적 연구성과라기보다는 교과서나 통사에서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과도한 민족주의적 내러티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국 역사의 연구를 민족-반민족 구도로 조직할 필요가 있을까. 해외 한국학계나 보수 우파의 역사해석을 제대로 비판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대안 담론을 제시하고 싶거든 사료 장악에 그치지 말고 다양한 사회이론 역시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은 이론에 관심이 없으니 사료만 보고 연구하겠다는 것은 이론을 업데이트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의어다. 혹은 개념을 엉성하게 사용하고 내러티브를 대충 구축하겠다는 말과 동의어다. 기성의 사료 독해는 이미 낙후된 이론적 습관에 침윤돼 있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에서 사료는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이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료 독해는 없다.
영어권 한국사 연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존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의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학자들은 이 저작의 바탕을 이루는 이론적 틀을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다. 제임스 팔레에서 존 던컨에 이르는 영어권의 한국사 해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슈무엘 아이젠슈타트의 역사적 관료국가론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뒤르켐과 막스 베버의 사회이론 및 그 대안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비판하더라도 지엽적 비판에 머물기 십상이다.
사료 독해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듯이, 한국학 연구에 필요한 이론적 역량은 어느 날 번역서 두세 권 읽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학생 시절부터 사료 독해 능력을 함양해야 하듯이, 일찍이 사회이론에 대한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론 수업이 한국학 관련 분야 커리큘럼에 장착돼야 한다. 그리고 그 커리큘럼 상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재를 분야를 넘어 널리 찾아야 한다. 자기 영역 출신으로만 학적 근친교배를 하겠다는 생각을 떨쳐야 한다. 한국학을 다루는 문사철(文史哲) 학과는 사회이론을 다룰 수 있는 학자를 채용하고, 사회과학계는 사료를 다룰 수 있는 학자를 교체 채용하지 않는 한 한국학의 발전은 난망하다. 한국학의 신은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그 신통력은 의심받고 있는데, 그 대안의 등장은 아직 요원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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