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무교동ㆍ서린동 낙지골목의 대표주자 격인 ‘원조 유림낙지’가 이달 말 문을 닫는다. 점포 이전이 아닌, 말 그대로 폐점이다. 매콤한 낙지 볶음이 대표 메뉴인 ‘원조 유림낙지’는 30년 넘게 서린동 일대를 지키며 넥타이 부대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갑자기 덮친 코로나19라는 대형 파고 앞에 유명 음식점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지난 3일 오후 12시께 기자가 찾은 ‘원조 유림낙지’는 한창 바빠야 할 점심시간이었으나, 빈 자리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인기 맛집’이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였다. 식당 관계자는 “한때 20명까지 있었던 종업원도 지금은 6명뿐”이라며 “지난해부터 경기가 좋지 않아서 어려웠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론 매출이 절반 아래로 떨어져, 현재 매출로는 임대료와 인건비도 맞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마저 장기화되면서 ‘노른자위’, ‘금싸라기’라던 서울 주요 상가들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외국인이 자주 찾는 명동과 강남은 물론, 대기업이 몰려있는 무교동마저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에 허덕이던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목소리다.
하루 유동인구 100만명에 달하는 초역세권인 강남역 일대에도 ‘임대’ 현수막이 걸린 빈 상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강남에서도 가장 번화한 동네로 꼽히는 곳이지만, 지하철 2호선 강남역부터 9호선 신논현역으로 가는 대로변에 늘어선 1층 건물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있다.
통상 강남역 대로변 1층 상가는 3.3㎡당 월 임차료가 100만원에 권리금도 1억원 이 넘어, 개인이 아닌 기업의 광고형 매장이 주로 들어온다. 그러나 기업들이 경기 악화 우려에 임차를 미루고 임차인은 급매를 내놓으면서 권리금이 반 토막 났다. 인근 G공인중개사 관계자는 “강남역 대로변 1층 상가는 대형 의류업체나 휴대폰 대리점, 화장품 가게들이 주로 차지했는데 이면도로로 밀려나거나 아예 강남역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중심 상권인 신촌에서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빨간색 ‘임대문의’ 딱지가 붙어있는 빌딩이 보였다. 신촌 먹자골목은 상가 지하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어있다는 것이 일선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A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월 임대료를 기존보다 10~20%까지 깎아주겠다고 해도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며 “코로나19 전염 가능성이 높은 지하 점포 등의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상가 공실률은 크게 늘어났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지상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를 초과하는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전분기 6.9% 대비 1.0%포인트 늘어난 7.9%였다. 지상 2층 이하거나 연면적 330㎡ 이하인 소규모 상가 또한 같은 기간 3.7%에서 4.0%로 증가했다.
특히 압구정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전분기 대비 7.5%포인트가 늘어난 14.7%에 달하고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이태원의 공실률은 9%포인트 늘어난 28.9%에 이른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울 주요상가 공실 문제는 임대료 10~20% 내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자영업자 부과 세금을 감면하고 단기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등 좀 더 과감하고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중심 상권과 함께 오피스가(街)도 코로나19 사태로 흔들리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이후 공실이 서서히 늘면서 임대차 시장이 빠르게 침체 중이다.
올해 1분기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전분기 대비 0.1%포인트 상승한 8.6%를 기록했다. 공실률이 크게 높아진 지역도 있었다. 강남구 도산대로는 같은 기간 11.1%에서 13.0%로 1.9%포인트 상승했으며, 서울 지하철3호선 신사역 인근도 6.3%에서 7.9%로 올랐다.
문제는 임대수요 침체다. 올해 여의도 파크원과 서울역 인근 SG타워 등 신규 공급도 예정돼 있다. 이에 따라 오피스 업계에서는 올해 2분기부터 공실률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오피스의 패러다임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진원창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 리서치팀장은 “코로나19 이후로 기업이 임대차 거래 결정을 유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오피스 공간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며 “공간 재배치를 통한 직원 동선을 최소화해 임차면적을 줄이거나, 아예 인력을 공유오피스 등에 분산시키는 방향도 고려 대상이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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