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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세계의 빈곤] 日 한부모가정 빈곤 심각… 비영리단체 무료식당 3년새 11배 급증

입력
2020.06.09 06: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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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6주년 기획 <2> 일본, 벼랑 몰리는 아이들

7명 중 1명이 상대적 빈곤 상태… 비정규직 모자가정 특히 취약

기업ㆍ지자체와 연계한 비영리단체, 빈곤 대물림 막는 지원활동 활발

어린이식당은 지역교류의 장 역할… “빈곤가정 고립ㆍ방치 막는게 중요”

지난달 28일 도쿄 도시마구 내 사쿠라 제2 구민광장에서 진행된 ‘도시마 런치 서포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 이들이 마련한 점심 도시락과 식품들은 관내 한부모 가정 등 빈곤 가정에게 매일 지급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지난달 28일 도쿄 도시마구 내 사쿠라 제2 구민광장에서 진행된 ‘도시마 런치 서포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 이들이 마련한 점심 도시락과 식품들은 관내 한부모 가정 등 빈곤 가정에게 매일 지급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애 둘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보육 관련 일을 하고 싶은데 자격증이 없어 정규직을 구하기는 너무 어려워요.”

지난달 28일 점심 때 찾은 도쿄 도시마구 공공시설에서 열린 ‘도시마 런치 서포트 프로젝트’ 행사장. 한 30대 여성이 비영리법인(NPO) ‘도시마 어린이 와쿠와쿠네트워크’(이하 와쿠와쿠네트워크)가 마련한 도시락과 음료수, 과자, 면 마스크 등을 챙긴 뒤 마당 한 켠에서 자원봉사자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도쿄 도시마구 시이나마치 어린이식당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빈곤가정의 아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준비한 카레와 샐러드들을 식판에 담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지난해 12월 도쿄 도시마구 시이나마치 어린이식당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빈곤가정의 아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준비한 카레와 샐러드들을 식판에 담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코로나에 더욱 취약한 한부모 가정

그는 외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초등학교 1학년생 첫째 딸과 장애를 가진 세 살짜리 둘째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딸을 데리고 매일 오후 5~10시 다른 집의 아이 두 명을 맡아주는 일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큰 딸이 학교에 가지 않는데다 장애가 있는 작은 딸을 맡길 곳이 없다 보니 일자리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는 “코로나19로 다들 재택근무를 한다지만 내겐 너무 먼 얘기”라며 “집에 컴퓨터도 없고 학력도 변변치 않아 몸을 쓰는 일용직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긴급사태 이후를 생각해 보다 나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둘째 딸을 맡길 곳을 찾지 않는 한 언감생심이다. 이에 자원봉사자는 “도시마구청 등에 특수학교 입학을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빈곤층을 습격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월 비정규직 고용자가 3월 대비 131만명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결과 고용시장에선 비정규직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이 많은 한부모 가정과 저소득 고령자들의 피해가 눈에 띄게 큰 상황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어린이 빈곤율은 2015년 기준 13.9%다. 어린이 빈곤율은 저소득층 가정의 18세 미만 어린이 비율을 보여준다. 일본의 어린이 7명 중 1명이 상대적 빈곤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2012년 16.3%에 비해선 수치상으로 다소 나아진 것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3.3%인 것을 감안하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선 여전히 높은 편이다.

특히 한부모(편부모) 가정의 절반이 빈곤을 겪고 있다. 일본의 한부모 가정의 빈곤율은 2015년 기준 50.8%로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10.7%)의 거의 5배에 이른다. 한부모 가정 중에서도 이혼이나 사별 이후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모자 가정이 가장 취약하다. 일본에서도 여성ㆍ비정규직에 대한 임금 격차가 상존하고 있는 탓이다.

어린이 빈곤 해결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방치할 경우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기회를 누리지 못한 결과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일본 정부는 2014년부터 어린이빈곤대책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생계에 바쁜 부모들은 관련 정보를 잘 모르거나 빈곤 가정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제도의 틈을 메우기 위해 각종 NPO들은 지방자체단체와 민간기업 등과 연계해 한부모 가정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가정이 늘어나면서 ‘빈곤의 악순환’을 막는 NPO 활동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도쿄 메지로성공회 건물에서 열린 푸드판토리 행사를 찾은 사람들이 기부 받은 헌옷들을 고르며 대화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지난해 12월 도쿄 메지로성공회 건물에서 열린 푸드판토리 행사를 찾은 사람들이 기부 받은 헌옷들을 고르며 대화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빈곤층 고립 방지’ 역할에 초점

NPO 와쿠와쿠네트워크는 그간 한부모 가정에 도시락과 식료품을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해 왔다. 뿐만 아니라 한부모 가정이 실질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빈곤 가정과 지자체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진 빈곤 가정에 식료품을 제공하는 푸드판토리(food pantryㆍ식료품 창고)와 빈곤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어린이식당 4곳을 운영해 왔다. 코로나19 이후엔 감염 우려로 어린이식당 운영은 잠정 중단했지만 한부모 빈곤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도시락 제공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도시락 제공은 도시마구 내 22곳에서 요일을 번갈아 가면서 매일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과 일반인들의 기부를 통해 식료품과 도시락을 마련한다.

구리바야시 지에코(栗林知絵子) 와쿠와쿠네트워크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물심 양면으로 부담이 증가한 빈곤 가정에 쌀 등 식료품과 점심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식료품과 도시락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상담을 통해 해결책도 모색하려고 한다”면서 “빈곤 가정이 고립되고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어린이 빈곤율 추이. 박구원 기자
일본 어린이 빈곤율 추이. 박구원 기자

실제 지난해 말 방문한 와쿠와쿠네트워크의 푸드판토리 행사와 시이나마치 어린이식당은 지역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1일 메지로성공회에서 열린 푸드판토리 행사에서 만난 30대 싱글맘은 “연 180만엔(약 1,900만원)의 수입으로 초등학생 딸과 생활하는데 월세와 식비를 내면 빠듯하다”면서 “여기서 식료품 지원은 물론 자원봉사자나 같은 처지의 다른 부모들과 아이 교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빈곤 가정 어린이에게 저녁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어린이식당도 지역교류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빈곤 가정뿐 아니라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고령자, 맞벌이 가정 자녀 등으로 대상을 확대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일본의 어린이식당이 2016년 319곳에서 지난해 6월 3,718곳으로 3년 새 11배나 급증한 배경이다.

시이나마치 어린이식당을 운영하는 아마노 게이코(天野敬子) 와쿠와쿠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돕는 활동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이웃과 절연돼 있는 주민들을 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당 이용 대상자를 빈곤 가정으로 한정할 경우 이 곳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26일 두 아이와 함께 시이나마치 어린이식당을 찾은 마오(38ㆍ가명)씨는 “솔직히 처음엔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다”면서 “그런데 실제 와보니 큰 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도 만나 교류하는 등 이웃들과 관계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도시마구 아동주임위원이자 자원봉사자인 모로다 아사요(諸田朝代)씨는 학교ㆍ병원에서 가정폭력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어린이식당 방문을 권하고 있다. 그는 “부모 없이 홀로 남겨긴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안부를 챙긴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자녀들의 일상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부모의 역할까지 대신하는 셈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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