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가출 여성 청소년 자립 지원하는 ‘새날에오면’
“자립(自立)이라는 말에 담긴 뜻을 아시나요?”
단순히 경제적ㆍ공간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분리된다는 의미의 ‘독립(獨立)’과 다르게, 자립은 내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혁주 ‘새날에오면’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사단법인 새날에오면은 만 14세부터 21세 여성 가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가족과 학교, 사회의 믿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독립과 자립 두 가지를 함께 이뤄가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가출 청소년들은 자립이 채 이뤄지기 전 강제로 독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다.
“자립은 ‘자기 자신을 신뢰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부모의 폭력이나 빈곤으로부터 도망쳐 길 위에 내던져진 친구들은 마음 밑바닥에 신뢰가 없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사랑과 신뢰를 꾸준히 불어넣어주는 겁니다. 좋은 어른들이 변치 않는 믿음을 줘야,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거든요.”
새날에오면은 가출 청소년들이 마음을 다잡은 뒤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디디기 전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양 사무국장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은 1,800명에 달한다”며 “언뜻 많아 보이는 숫자지만, 1년에 가출 청소년이 2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생각하면 턱없이 적다”고 말했다.
시작은 1997년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노동자들이 무너졌고, 수많은 가정이 붕괴됐다. 가정 내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인 청소년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특히 여성 가출 청소년들은 성매매 범죄의 주요 목표물이 됐다.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당시 감리교 여성 목회자들이 1998년 국내외 후원을 받아 마련한 ‘새날을여는청소녀쉼터’가 시발점이 됐다. 2009년에는 서울시와 함께 가출 청소년을 위한 ‘늘푸른자립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서울시 지원으로 새날에오면이라는 인턴십 센터도 열었다. 이 중 새날에오면은 지난달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이 곳은 집이자 학교이자 사회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함께 교육센터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사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새날에오면이 자체 운영 중인 카페를 통해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다. 물론 각 과정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특히 바리스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하루 3시간씩 일주일 동안 수업을 받고 두 달 간의 인턴 훈련을 거친 뒤 정식으로 계약서를 쓸 수 있다. 이후 1년간 실무 교육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부매니저’ 직함을 달고 바리스타로서 일할 수 있게 된다.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길러주기 위한 과정이다.
중도 포기자들도 부지기수다. 양 사무국장은 “시간관리나 자기관리, 재정관리를 누구한테 배워본 적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오랜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익혀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며 “못 버티고 다시 거리로 뛰쳐나가는 아이들, 약속해놓고 안 나오는 아이들, 그러다가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까지 각양각색”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성공적으로 사회에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직업훈련까지 잘 마치고 세상에 나갔지만, 적응하지 못한 채 상처만 받고 방황하다 다시 나쁜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새날에오면과 연계 단체들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쉼터와 따뜻한 교육, 무조건적인 신뢰는 아이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에 성공하는 것도 큰 성과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전과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의 태도다.
양 사무국장은 수년 전 한 아이의 변화를 보면서 신뢰의 힘을 느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부모의 폭력으로부터 15세 때 도망쳐 나온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아이의 유일한 소원은 “서른 살에 죽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쓸모 없어 보이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그러던 아이가 1년 반 뒤 그를 찾아와서는 “이제 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항상 그 자리에 서서 변함없는 신뢰를 주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실수도 실패도 덜 두려워졌다는 것이다. 양 사무국장은 “조금만 실수를 해도 죽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눈빛과 삶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고 능동적인 성격으로 변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마음 속 자립에 성공한 아이들은 다른 가출 청소년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된다. 양 사무국장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건 온 세상을 구한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며 “한 명에게 사랑을 줘서 그 친구가 회복하면, 주변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덩달아 힘을 얻고 일어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립해 떠난 아이들 중 다시 돌아와 선생님이 되거나 직원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익명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내오는 이들도 있다. 아이들끼리 한 공간 안에 모여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새날에오면이 바라는 것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아이의 ‘선한 영향력’이다.
새날에오면은 앞으로 청소년들이 다양한 직업 교육을 받아볼 수 있도록 카페 외에도 자립매장 종류를 다각화하는 등 안전한 공간과 공동체를 확대해갈 예정이다. 양 사무국장은 “어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강하고, 힘이 있다”며 “안전한 공간과 좋은 어른의 존재만으로도 아이의 세상에서는 많은 것이 바뀐다는 생각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