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매년 실시하는 공동 여론조사 결과 양국 관계가 “나쁘다”는 응답이 사상 최악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일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한국 국민은 90%, 일본 국민은 84%였다. 지난해보다 나빠진 것은 물론 이 조사를 시작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악화한 관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도 일본은 72%, 한국은 55%에 달했다.
양국 관계 악화의 중심에는 역시 과거사 문제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국민적 저항을 불렀지만 일본 입장에선 지켜지길 원했던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재검토를 약속하며 출범, 합의의 상당 부분을 무효로 했다. 2018년에는 강제징용 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일본 측에 배상 명령 판결을 내렸다.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만큼은 해결됐다고 주장하던 일본 정부는 이에 반발, 대한(對韓) 수출 규제 조치로 맞불을 놨다. 과거사 문제를 경제 분야로 확대한 납득하기 어려운 대응에 우리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으로 대응했다.
일련의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반응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수습됐다고 믿었던 강제징용 문제가 배상 판결로 새 국면을 맞은 것이나, 가까스로 해결됐다고 생각했던 위안부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에 불만이 클 것이다. 하지만 강제징용은 국가 간 조약으로 문제를 풀었다 해서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국제법상 해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위안부 합의도 양국 간 약속 직후부터 한국 내에 심각한 역풍이 있었다는 것을 일본도 모를 리 없다. 때문에 지난해 갈등을 우리 정부가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유예, 전략 물자 체계적 관리 방안 제시로 수습의 단초를 마련했음에도 일본 정부가 요지부동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조사에서 일본의 20대 이하 젊은층은 “한국을 신뢰한다” “친밀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각각 45%, 61%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는 과거사 문제에 심각하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법과 원칙은 중요하지만 지난 역사를 이런 기준으로만 따지면 해답을 찾기 어렵다. 양국은 지금이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유연한 외교적 협상에 나서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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