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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세계의 빈곤] 실업급여, 노동자 빈곤 막고 비상 경제 지탱 ‘일등 공신’

입력
2020.06.10 04: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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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66주년 기획 <3> 미국, 노동자 삶 지탱한 실업급여 

 많게는 매주 150만원씩 지급… 美 실업급여 연장 갑론을박 

 “도덕적 해이… 일터 복귀 꺼려” “비상 경제 지탱하는 장치” 

 공화당, 7월 말 ‘지급 종료’ 지지… 민주당은 ‘유지’ 입장 

지난 3월 1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실업수당을 청구하려는 이들이 ‘원스톱 커리어 센터’ 앞에 줄지어 서 있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지난 3월 1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실업수당을 청구하려는 이들이 ‘원스톱 커리어 센터’ 앞에 줄지어 서 있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실업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막상 구직을 신청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네요.”

최근 식당 영업이 제한적으로 재개된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州)의 한 식당 주인은 7일(현지시간) “파트타임 직원을 구하려 했지만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그만뒀던 직원들 중에선 복귀 제의에 응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식당 주인은 “코로나19 감염이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실업 급여가 많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실직자들이 높은 실업급여 때문에 업무 복귀를 미루는 것 아니냐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버지니아 일대만 해도 영업 제한이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어서 일자리 대비 구인난을 겪는 상황은 아니라고 식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영업 재개 조건에 맞지 않아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다는 다른 식당의 주인은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그나마 실업급여라도 받고 있으니 천만다행 아니냐”고 했다.

코로나19로 봉쇄됐던 미국 경제가 일부 숨통을 트고 있는 상황에서 대량 실직자들을 ‘구제’했던 실업급여의 연장 여부를 두고 미 정치권에서 논란이 뜨겁다. 일단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3월 마련된 2조2,000억달러(약 2,631조원)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포함된 연방정부의 실업급여가 사상 최악의 대량실업 사태에서도 노동자들의 빈곤을 막고 미국 경제를 그나마 지탱시켜주는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실업급여의 실효성을 두고는 이견이 뚜렷하다. 경제 봉쇄 국면에서 효과를 발휘했더라도 저임금노동자들의 평균적인 임금 수준보다 높기 때문에 경제 재개 과정에선 되레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반면 대량실업이 여전하고 경제 회복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실업급여가 중단되면 실직자들의 빈곤 문제뿐 아니라 경제 전반이 연쇄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다음달 말 종료되는 연방정부의 추가 실업급여 예산 확보를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 간 평행선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실직자들은 주정부에서 받는 기존 실업급여 외에 추가로 연방정부로부터 주당 600달러를 받은 결과 지역에 따라 주당 900~1,200달러를 받고 있다. 여기에 4월에는 성인 1인당 재난지원금 성격의 현금 1,200달러까지 지급받았다. ‘실업 쓰나미’ 속에서도 4월 평균 개인소득이 10.5%나 증가한 이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영업장 폐쇄가 본격화한 지난 3월 15일 이후부터 5월 말까지 11주간 실직을 뜻하는 신규 실업급여 신청은 4,200여만건에 이르고 이 중 실제로 실업급여를 받은 이는 3,000만명에 달한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가 쏟아부은 돈이 4월 480억달러, 5월 860억달러다.

공장과 상점이 문을 닫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연쇄적인 경제 파탄을 피할 수 있었던 데에 대규모 긴급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실직자들이 월세, 차량 대출금, 전기세 등 각종 비용을 지불하고 식료품 등을 구입하면서 경제의 기초순환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저임금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엘리자베스 아나낫 바너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월급만 바라보고 사는 이들에게 실업급여가 지원되면서 집값 지불 위기나 아동 영양실조 위기 등을 피할 수 있었다”면서 “경제 전반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적극적인 실업급여 지급이 향후 경기 반등을 위한 기초체력을 유지시켰다는 뜻이다.

문제는 실직자들에게 큰 의지가 되고 있는 실업급여가 7월 말로 종료될 예정이란 점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하원에서 3조달러의 추가 경기부양안을 통과시켜 실업급여도 연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공화당은 경제활동 재개에 따라 실직자들의 직장 복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너무 많은 실업급여 때문에 직장 복귀를 꺼리게 될 경우 경제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시카고대 연구진은 실직자의 68%가 실직 전 월급보다 더 많은 액수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공화당 소속 척 그레슬리 상원 금융위원장은 “이 정책을 연장하는 건 실직자들의 정부 의존을 부추기게 될 것”이라며 “경제와 개인 모두에게 건전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업급여가 임금보다 높으면 실업을 유도한다는 게 정상적인 시기에는 통용될지 몰라도 지금은 그런 정상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재개하더라도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앞으로 상당 기간은 제한적인 활동에 그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여전히 고실업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실업급여를 통한 실직자 구제가 지속돼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하반기 경기 전망에 대한 양당 간 시각 차도 깔려 있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실업급여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의 실업급여가 높은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는 문제의식이 그 출발이다. 또 주정부 차원의 낮은 실업급여를 연방정부의 안정된 제도 속에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권익 증진 단체인 ‘전미고용법률프로젝트(NELP)’의 미셀 에버모어 선임연구원은 “실업급여에 들어가는 돈은 지역사회의 피를 돌게 함으로써 경기침체 국면에서 연쇄 파산을 막은 일등공신이었다”면선 “실업급여 중단은 노동자 개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도 해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시적 위기 대응이 아니라 연방정부 차원의 안정적인 실업급여 제도를 갖고 있었다면 돈이 훨씬 더 빨리 순환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실업급여 제도를 개혁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야외 테이블에 한해 레스토랑 운영 재개를 허용한 8일 보스턴의 한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레스토랑 사업자들은 이동 제한 완화에 따른 영업 재개 후에도 코로나19 감염 우려와 실업수당에 대한 만족감으로 일터로 복귀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보스턴=AP 연합뉴스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야외 테이블에 한해 레스토랑 운영 재개를 허용한 8일 보스턴의 한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레스토랑 사업자들은 이동 제한 완화에 따른 영업 재개 후에도 코로나19 감염 우려와 실업수당에 대한 만족감으로 일터로 복귀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보스턴=AP 연합뉴스

실업급여를 중단하면 특히 흑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경제 재개가 본격화하면서 백인 노동자들의 실업률은 떨어진 반면 흑인 실업률은 여전한 것으로 조사된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한 상황에서 실업급여 중단이 흑인 사회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차드 트럼카 미 산별노조협회의(AFO-CIO)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로 유색인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는데 실업급여가 중단되면 더 심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이 실업급여 연장을 주장하는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실업급여는 중단하되 복직 보너스를 제공해 취업을 유도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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