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원 구성 급해 토론 고려 못해
물밑 움직임…다음주부터 행동 나설 듯
“무상급식보다 파괴력 커 부담 느끼기도”
이재명 경기지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기본소득 공개토론을 제안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아직 미온적이다. 무시해서가 아니라 국회 개원과 원 구성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도입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성남시장 시절 도입했던 청년배당, 무상교복, 공공산후조리원 등 3대 무상복지도 대상자에게 보편적으로 직접 혜택을 준다는 측면에서 기본소득과 비슷하다. 기본소득은 이 지사의 공약1호이기도 하다.
이 지사가 이번에 성남(3대 복지) 경기도(재난기본소득)를 벗어나 전국민 대상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먼저 기본소득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이 불황으로 이어지는 걸 막을 효과적 방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지사는 평소에도 “4차산업혁명시대는 AIㆍ로봇 등으로 일자리가 소멸하고 이는 소비절벽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기본소득은 사라진 구매력을 복원해 구조적 불황에 빠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는 소신을 밝혀왔다.
이 지사는 특히 1인당 1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보편 지급한 뒤 나타난 효과를 수치로 확인하고 자신감을 더 얻었다. 실제 경기도 소상공인매출은 재난소득 지급 후 18% 늘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대비 카드사용회복율도 재난소득을 지급하지 않은 타 시도와 최대 15%포인트까지 차이가 났다. 최종 판단은 이르지만 실제 효과가 증명된 것이다.
둘째는 이번이 기본소득 도입을 공론화 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진행 중인 지금 벌써 대공황, 2차세계대전 때의 충격파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08년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금융위기는 이제 비교대상도 아니다.
이 지사는 전 국민이 미증유의 위기에 노출됐고 대안이 필요한 지금 정치권도 나설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결은 다르지만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이낙연 국회의원도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의당은 보편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편이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이제 불씨만 당기면 된다는 것이다.
◇낙수효과는 허구…목마른 데 직접 물 줘야
셋째로 이슈 파이터인 이 지사는 ‘낙수효과’와 ‘선별복지’라는 수 십년 된 지론을 이제는 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지사는 “낙수효과는 투자금이 부족하던 과거 고성장시대에는 진실이었으나 수요부족으로 투자할 곳이 없어 투자금이 남아도는 현재는 명백한 허구”라면서 물이 필요한 곳에 직접 주자는 ‘직수효과’를 주장하고 있다. 분수처럼 이제는 아래의 물로 위를 적셔야 한다는 말이다. 기본소득 지급으로 물을 채워 오히려 기업을 살리자는 것이다.
선별복지는 이미 각종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선별하고 감시하는 비용이 너무 크고 △세금을 많이 내는 납세자를 거꾸로 차별하며 △경계의 모호성과 불합리성 △위화감 조성 등 폐해가 더 크다는 주장이다. 로봇세나 국토보유세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단계별로 지급규모를 확대하면 보편적 기본소득은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면서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일단 정치권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가장 큰 우려는 2009년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주장했던 무상급식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당시 좌우가 크게 갈려 논쟁을 벌이고 보수측은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로 밥주나’ ‘포퓰리즘이 나라 거덜낸다’ ‘제2의 아르헨티나 꼴 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반대했으나 결론은 진보의 승리로 끝났다.
기본소득은 보편이나 선별이냐는 측면에서 무상급식과 프레임이 동일해 자칫 이 문제를 당론으로 반대했다 닥칠 역풍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송석준(이천) 경기도당위원장은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언급한 만큼 여의도연구소나 당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통합당도 이를 발전적이고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논란…토론으로 기초 다져야
여권도 일단 신중한 반응이다.
기본소득은 재정투입 규모 면에서 무상급식보다 훨씬 커 포퓰리즘ㆍ재정악화 비난우려가 높고 특성상 일단 시작하고 나면 철회하기가 힘들어 섣불리 나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일부 여당의원들은 무상급식 때와는 반대로 ‘대기업 직원에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냐’면서 전국민 고용보험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나친 재정확대를 막기 위해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부지만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가 선점한 기본소득 도입 주장에 들러리를 서기도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도 있다.
민주당 김민기(용인기흥) 의원은 “기본소득은 당 차원에서 검토가 있을 것으로 보지만 지금은 개원과 원 구성이라는 현안이 있어 신경을 못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국민의 관심이 높은 만큼 다음 주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 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 측은 이 같은 논란을 내심 반기고 있다. 결과가 어찌되든 기본소득을 이슈화하고 주도권을 쥐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한 방송사로부터 시사토론 제안을 받고 논리를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사는 SNS를 통해 “(기본소득 도입을) 선진국이 못했다고 우리도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선진국을 압도한 K방역처럼 K경제로 자본주의 경제사를 다시 쓰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누구든 가리지 않고 국민들이 지켜보는 공개토론의 장에서 만나길 원한다”며 과감한 ‘맞장’을 제안했다.
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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