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미국의 민간 기업 스페이스X가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다. NASA 소속 비행사 2명을 태운 우주선 ‘크루 드래곤’은 약 19시간 뒤에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했고, 영상을 통해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스페이스X가 민간 우주탐사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관련 소식들이 쏟아졌다. 로켓을 재활용하여 비용을 대폭 절감시킨 것을 비롯해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를 우주선 ‘스타십’의 개발에 대한 기대까지 그 내용도 다양했다. 한층 날렵해진 우주복도 주목받았는데, 맞춤형 헬멧의 경우 3D 프린팅을 통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주개발 사업에 3D 프린터가 활용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편, 3D 데이터 구현 기술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재조명되고 있다. 방역용품과 의료장비 등이 부족해지자 3D 프린터를 이용한 일회용 검사도구나 산소호흡기 부품이 제작되면서 해당 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제조 기술 중 하나로 언급되는 3D 프린팅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기술은 제조 공정에 막대한 초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디자인을 테스트하거나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품 개발자들을 놀라게 했다. 1999년에는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 방광이 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었고, 이후 인공 신장과 의족ㆍ의수ㆍ의치 등도 제작되었다.
2004년 영국의 에이드리언 보이어(Adrian Bowyer)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생산의 민주화’를 목표로 ‘렙랩(RepRap)’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렙랩은 설계 등 제작 과정을 공개하여 누구라도 이를 토대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오픈소스 3D 프린터 개발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제품 모델과 전문 회사들이 탄생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3D 프린팅이 제품의 생산 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라고 언급했다. 같은 해 세계경제포럼에서는 3D 프린팅이 미래를 바꿀 10대 신기술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3D 프린터로 제작된 자동차와 집, 무인항공기까지 등장하면서 이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것이 요청되었다. 이에 우리나라는 삼차원 프린팅 산업을 활성화하고 그 발전 기반을 조성하고자 2015년 12월 22일 ‘삼차원프린팅산업 진흥법’을 제정하였다.
3D 프린터가 대중화되면서 이를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일본과 영국에서는 3D 프린터로 권총을 제작한 사람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러한 총기는 살상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져서 금속 탐지기에 걸리지 않고, 등록번호나 일련번호가 없어 추적도 어렵다. 호주에서는 현금자동입출금기에 3D 프린터로 만든 카드 정보 복제 장치를 설치한 후 복제 카드로 돈을 훔친 사건이 발생했고, 우리나라에서는 3D 프린터로 만든 실리콘 위조 지문으로 부동산 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이 잡히기도 했다.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만든 식도가 사람을 살해하는 흉기로 쓰이고, 컬러 복사기가 보급되면서 가짜 지폐나 수표가 손쉽게 만들어졌듯이 3D 프린터가 악용되는 것을 애당초 막을 길은 없다. 해당 범죄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제재를 가하고 제도적 보완책을 모색하는 것으로 족하지, 3D 프린팅의 대중화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3D 프린팅은 형사사법 영역에서도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필요한 의치를 3D 프린터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종래 텍사스 교도소는 수감자들의 의치 제공 요청을 거부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러나 치아가 없는 수감자들이 유동식을 마실 수밖에 없어 체중 미달이나 합병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된 텍사스 교도소는 3D 프린팅 의치를 제공하겠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이는 수감자를 외부 병원으로 이송할 필요가 없고, 그 비용도 1인당 50달러 정도에 불과하여 효율적인 방안으로 평가된다. 또한 3D 프린팅은 범죄 현장 자체를 구현할 수 있고, 법정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데 필요한 흉기나 범행 흔적이 있는 피해자의 유골 등을 제작함으로써 배심원이나 판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영국에서는 법정 사건 재연에 필요한 범행 도구가 3D 프린터로 만들어졌는가 하면, 종래에는 사진을 통해 2차원적으로 파악되던 유골 상태가 3D 프린팅을 통해 제시되기도 했다. 가상현실 구현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가운데, 여전히 종이 인쇄물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사법 분야는 기술의 혁신이 더디게 반영되는 영역으로 거론된다. 3D 프린팅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기존 시설에 큰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도 쉽게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해 가는 지금, 형사사법 분야에서도 첨단기술이 보다 전향적으로 수용되기를 바란다.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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