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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 밖의 남자’ 채이배 “나를 감금한 사람들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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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 밖의 남자’ 채이배 “나를 감금한 사람들 책임져야”

입력
2020.06.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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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정당을 만드려는 실험은 계속될 것… 힘 보태겠다”

회계사 복귀 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출마… “공정한 경제 만들고 싶다”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이 지난해 4월 25일 한국당(통합당 전신) 의원들이 의원실을 점거하자 창문을 통해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이 지난해 4월 25일 한국당(통합당 전신) 의원들이 의원실을 점거하자 창문을 통해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창문 틈으로 겨우 고개만 내밀고 도움을 요청하던 한 남자. 기억나시나요? 현직 국회의원이 다른 의원들에 의해 사실상 ‘감금’이 된 건데요.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법한 일인만큼 아마 많은 국민이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관련된 재판도 진행 중이고요.

때는 지난해 4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날은 검찰 개혁을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의 논의가 예정돼있던 날이었는데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대하던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의원들이 사보임으로 사개특위 위원이 된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을 막아선 겁니다. 집도 못간 채 의원실에서 쪽잠을 자던 그를 밖으로 못 나가게 둘러싼 거에요.

“창문을 뜯어서라도 나가야 합니다.” 회의 참석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그 남자, 초선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일’하다 국회를 떠난 그 남자, 임기가 끝나자 ‘공정한 경제 생태계 만들기’라는 책을 남기고 회계사의 길로 되돌아간 그 남자,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을 만나봤습니다.

◇탄핵, 조기 대선에 감금까지… 쉽지 않았던 4년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야당 초선의원.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난 4년, 어땠나요.

“4년 동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요. 정당 활동과 의정 활동 모두 다 평지풍파가 많은 시기였거든요. 흔히 시원섭섭하다고들 얘기 하는데, 임기를 마칠 즈음엔 섭섭하다기 보단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떤 점이 특히 힘들었나요.

“제가 몸담았던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시작했는데 제3당, 중도정당이라는 위치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도된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 보수는 보수대로 공격을 하고, 진보는 진보대로 공격을 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죠. 가장 많은 비판이 더불어민주당 2중대가 아니냐, 새누리당 2중대가 아니냐는 거였어요. 언론에서도 진보와 보수로 진영을 나눠 설명하는 것이 익숙해서 그런지 제3당에 대한 평가가 박했어요. 그런 게 힘들었죠.”

-4년 동안 큰 일도 많이 겪었잖아요.

“2016년 말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나타나면서 정치 일정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너무나 큰 일을 겪어야 했던 거에요. 국회의원 된 지 1년도 안 된 상황이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또 탄핵 무렵부터 문자 폭탄이 쏟아졌는데 엄청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줬고요.”

-다른 시기였다면 좀 달랐을까요.

“매 국회마다 이번 국회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요. 여의도의 정치는 항상 진영 논리에 의해 이뤄지다 보니 어느 시기든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다만 탄핵이나 조기 대선은 20대 국회가 아주 독특하게 경험했던 것이었죠.”

-개인적으로 감금 사태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의원실을 점거했던 의원들로부터 사과를 받았나요.

“통합당 의원님들이 저를 볼 때마다 검찰에 기소가 돼있으니까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 불원서를 써달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외부 인사가 고발을 했기 때문에 제가 고발을 취하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많은 의원님들이 저보고 처벌 불원서를 써 달라고 하면서도 한 번도 사과는 없었어요. 이런 걸 써달라고 하면 최소한 미안하다고 사과는 해야 하는데, 사과도 없이 당신들 필요한 것만 요구하니까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고요. 결국 안 써줬어요.”

-감금 사태를 비롯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충돌 사건과 관련한 재판이 공전 중이에요.

“패스트트랙은 결국 정치적 과정이에요. 정치적 과정에서 있었던 폭력 사태에 대해 국회법 위반 여부를 갖고 논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어떻게 매번 정치적 과정을 두고 법원의 판단을 받겠어요. 정치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타협하는 게 좋죠. 다만 감금 상황은 국회법 문제가 아니에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을 한 거라 책임자들은 반드시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벌불원서를 쓰지 않은 이유도 책임자들이 법원의 판단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그래야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죠.”

◇장하성에서 시작된 중도정당 실험 “실패는 했지만…”

장하성(왼쪽) 주중대사와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스승과 제자로 연을 맺은 이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장하성(왼쪽) 주중대사와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스승과 제자로 연을 맺은 이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시민운동에 힘쓰던 채 전 의원이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스승이었던 장하성 주중대사의 영향이 컸습니다. 5일 발간한 저서 ‘공정한 경제 생태계 만들기’에서도 장 대사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할 정도로요. 그는 책에서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면서 여러 정당에서 러브콜을 받던 장 대사를 따라 안철수 캠프에 간 것이 그 시작이라고 했어요. 장 교수를 도우러 갔다가 현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거죠. 그는 그렇게 중도정당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장하성 주중대사와는 청와대 인사와 야당 의원으로 길이 갈라졌어요. 같은 길을 걷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은 없었나요.

“정권이 그렇게 빨리 바뀌고 장 교수님이 청와대에 가실 줄은 둘 다 몰랐던 거죠. 하지만 20년 동안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같은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자리가 달라도 결국 가는 길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다만 장 교수님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문제점을 바로잡지 못한 건 안타까워요. 제가 생각하기엔 소득주도성장이 최저임금 인상이 아닌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더 지속 가능했을 것 같아요. 장 교수님이 청와대에 가서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바로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요. 물론 아직 장 교수님과 이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게 되겠죠.”

-국민의당에서 바른미래당 그리고 민생당으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4년 임기 동안 당적이 여러 번 바뀌었어요.

“희망을 갖고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는데,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후회가 돼요. 그 당시 (국민의당) 당원들과 제3지대 정당을 지지했던 국민께 죄송하죠.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라고 생각하면서 제3당을 이끌어왔는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너무 조급하게 판단한 것 같아요. 잘못된 과정이었죠. 만약 국민의당이 잘 유지됐다면, 21대 국회에 아직도 원내정당으로 살아남아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의 민생당은 아예 원외정당이 돼버렸잖아요. 국민 뜻을 잘 읽지 못한 거죠.”

-당을 바꿔나갈 수는 없던 건가요.

“바꿔나가려고 노력했어요. 바른미래당을 청년정당으로 바꿔서 중도개혁정당의 정체성을 갖고 미래지향적인 당이 되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여러 청년 정치그룹을 만나고 개별 청년들과 만나서 당에 합류하도록 노력했는데, 그 과정이 2월 초에 완전히 물거품이 됐어요. 바른미래당이 미래지향적인 청년정당이 됐어야 했는데 민생당으로 되면서 과거로 회귀했어요. 그러면서 저도 (21대 총선) 불출마를 결심했어요.”

-중도정당에 대한 열망이 대단해 보여요.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요.

“중도정당을 만드는 실험은 계속될 거에요. 국민은 진보냐 보수냐의 이분법적 사고로 움직이지 않거든요. 중도층, 무당층이라고 불리는 국민도 많잖아요. 보다 합리적으로 사회가 굴러가려면 양극단의 진영만 있는 게 아니라 중도가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실험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정당이 있다면 힘을 실어주고 싶고, 현실 정치인으로 복귀한다면 그런 정당과 함께하고 싶어요. 단계적으로는 중도정당이 생길 거라고 봐요.”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요.

“원내정당 중에선 ‘시대전환’이 유일하게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이에요. 시대전환에서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만들고 있는데, 진보진영에서 이 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권후보가 있다면 같이 정책 연대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후보가 당선이 되면 민주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이지만, 미래지향적 중도 정책을 펼치는 거죠. 그게 제3의 길을 가게 만드는 작업일 수 있어요. 만약 실패한다면 민주당 내에서 자체적으로 중도의 길을 가도록 노력해야겠죠. 다른 당이 진보진영에서 성장하게 만들고 민주당이 중도정당이 된다면 정치가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 과정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요.

“이미 그런 상상을 하면서 시대전환에도, 민주당에도 조언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 생각을 계속 설파하다 보면 동조하는 분들이 모일 거고, 저는 그런 분들이 모여 활동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거에요. 제가 4년 뒤 총선에 출마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회에 다시 들어가서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중도정당이 제대로 뿌리내리는 실험은 꾸준히 할 거에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의원에서 다시 회계사로… “공정한 경제 생태계 만들겠다”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 전 의원은 5일 한국 경제 위기의 해법을 담은 책 ‘공정한 경제생태계 만들기’를 펴냈다. 정준희 인턴기자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 전 의원은 5일 한국 경제 위기의 해법을 담은 책 ‘공정한 경제생태계 만들기’를 펴냈다. 정준희 인턴기자

채 전 의원은 의원 임기를 마치고 다시 회계사의 길을 걷고 있어요.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 회장에 도전한 건데요. 회계사에서 시민운동가로, 의원에서 다시 회계사로 ‘직’은 여러 번 달라졌지만, 공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업’은 늘 한결같았다고 해요. 최근 발간한 책 제목처럼요. 그 업을 실현할 수 있는 활동이 바로 한공회 회장직이었다고 합니다. 채 전 의원은 17일 한공회 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 운동에 한창이에요.

-얼마 전까지 현직 국회의원이었는데, 언제부터 한공회 회장에 출마하겠다고 결심한 건가요.

“2월에 21대 총선 출마를 접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회계 투명성을 위해 회계사의 역할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는데, 회계사들이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는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국 경제가 공정해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때 마침 한공회 회장 선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3월 말부터 회계사 선배들을 만나 의견을 나눴고, 4월 중순쯤 회장 출마를 결심했어요.”

-한동안 회계사직을 떠나있었잖아요. 다른 후보들은 회계법인 대표, 회장 등 잔뼈가 굵어요. 본인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국회, 정부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한동안 한공회의 위상이 낮았어요. 국회에서의 입법 활동이나 금융 당국과 소통이 부족했는데요. 업계에서 한공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현 회장을 영입했어요. 신외감법 통과에도 일조했고, 훌륭하게 회장직을 수행했죠. 그런 면에서 업계의 위상을 높이고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려면 제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공정경제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회계사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회계사가 일을 잘 하면 기업을 바로 세우게 되고, 그 일을 통해 국가 경제가 지속가능해질 테니까요. 특히 회계사들이 국회에 가서 예산 심사에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겠죠.”

-상당히 일을 잘한, 그리고 많이 한 초선으로 기억됩니다. 21대 국회 의석의 상당수를 차지한 초선 의원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요.

“국회라는 집단은 선수와 나이를 중요시해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공간이 많지 않아서 스스로 위축됐죠. 그때 300분의 1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더 적극적으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수 높은 선배들의 관행에 묻어가지 말고, 본인이 이 국회에 왜 왔는지, 할 일이 무엇인지 되새김질하면서 실행했으면 해요.”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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