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집 기부약정서 조작 통한 재산 상속한 정황 드러나
나눔의집에서 2014년 6월 사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의 ‘기부약정서’가 위조됐다는 의혹(한국일보 5월23일 보도)이 제기된 가운데 생전 할머니가 나눔의집이 아닌 다른 시설에 유산을 기부할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는 육성 녹음파일이 처음 공개됐다. 소송을 통해 할머니 재산을 상속했던 나눔의집에 불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심 청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11일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공개한 할머니 육성 녹음파일에 따르면 2014년 3월과 5월 두 차례 할머니는 유산을 중앙승가대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랜 기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연구해 온 박 교수는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남기기 위해 할머니들의 동의를 얻고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2014년 3월 11일 박 교수와 나눈 대화에서 할머니는 “광주(은행)에는 1억 500(만원)이 들어가있으니 그걸 내가 좀 찾아가지고 승가(대학)에 시주하고 싶다”며 “승가도 내가 전화를 해서 미리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해 5월 7일에도 “승가대학교 제일 높은 사람 불러서 3000만원 기부한 사람 아시냐고 물어봐라”며 “그래서 안다고 하면 그 사람 전화번호 좀 알아봐달라”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가 “할머니, 또 기부하려고 하시는군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또 기부한다고 내가 약속을 했거든”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뜻과 달리 재산은 나눔의집으로 귀속됐다. 나눔의집은 2014년 4월 10일에 작성됐다는 할머니의 기부약정서를 근거로 상속인과 소송을 벌인 끝에 지난해 1월 1억5800여만원의 재산을 넘겨받았다. A4 용지 한 장짜리 약정서에는 ‘본인의 전 재산을 나눔의집에 전액 기부합니다’라는 문구 아래 할머니 이름이 한자로 새겨진 도장과 나눔의집 대표 직인이 찍혀있다.
앞서 나눔의집 내부 직원들은 할머니가 기부약정서를 작성한 당일 병원에 입원했다는 간호일지를 뒤늦게 발견하고 기부약정서의 조작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기부약정서 작성 6일 후 할머니와 박 교수가 나눈 대화록에 따르면 할머니는 박 교수에게 나눔의집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박교수는 할머니와 나눔의집 사이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나눔의집과)무슨 사인 같은 거 하신 거 있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아니, 무슨 사인?”이라고 되물었다.
나눔의집 횡령 의혹을 제기한 내부고발 직원들을 대리하는 류광옥 변호사는 “할머니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부약정서를 조작했다면 이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때문에 손해배상 소송이나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도 “할머니께서 생전 수 차례 나눔의집에 대한 불만을 밝혔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기부약정서의 조작을 의심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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