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일치율 99.987%... 입양인 최초 ‘친부 확인’ 소송서 이겨
다음주 친부와 만나… “엄마를 찾는 여정, 너무 늦지 않았기를”
“만나고 싶어요, 엄마. 미안해 하지 말아요.”
36년 전 해외로 입양돼 한국을 떠났던 카라 보스(38ㆍ한국명 강미숙)가 이역만리에서 법정싸움까지 불사하며 걸어온 힘겨운 여정 끝엔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누구일지, 잘 살고는 있는지, 나를 버린 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진 않을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잘 살고 있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을 확인한다.” 12일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염우영 부장판사의 선고 직후, 법정엔 서글픈 울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를 찾기 위해 미숙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친부를 상대로 친생자 확인 소송을 내는 것뿐이었다. 미숙씨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모든 상황이 자신을 법정으로 이끌었다”고 털어놨다.
미숙씨는 1984년 미국 미시간주로 입양됐다. 1983년 11월 18일 충북 괴산군 한 시장에서 발견된 그녀는 당시 “두 살. 이름은 강미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영민한 아이였다.
미국인이 된 미숙씨는 네덜란드 남편과 결혼해 암스테르담에서 두 아이를 낳았다. 딸이 두 살이 됐을 때 스스로 옷을 입으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입양 갔을 때도 이만했겠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 미숙씨는 불현듯 엄마가 자신을 버렸을 때 느꼈을 극심한 고통을 떠올렸다. 엄마가 어떤 상황이었길래 자신을 버리고 그런 ‘고통의 길’을 걷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미숙씨가 ‘정체성을 찾는 여정’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2016년이다. 미국 입양 기관에서 자기 기록을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유전자(DNA) 정보를 온라인 족보찾기 플랫폼 ‘마이헤리티지(MyHeritage)’에 등록했다. 이듬해 미숙씨는 한국에 와서 그녀가 버려졌던 장소를 찾았고 관공서와 입양 전 머물렀던 충북 청주시의 ‘희망원’을 방문해 추가 정보를 파악하려 했지만 남아있는 서류가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2년간 살았는데도 이 땅에 주민번호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미숙씨는 절망했다. ‘고아 호적’이라 해서 입양인들은 단독 호적에 오른 뒤 해외로 입양됐고, 입양 후 정보 관리는 사설 입양기관의 소관이었다. 한국엔 출생 즉시 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없었다.
미숙씨가 희망을 품게 된 건 지난해 1월 마이헤리티지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으면서다. 자신과 DNA 정보가 일치하는 남성을 찾은 것이다. 재미 삼아 DNA 정보를 올렸던 이 남성은 미숙씨의 이복조카였다.
하지만 부모님을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금세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이복 언니들, 그러니까 친부가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 친부와의 만남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복언니 집 앞에서 무릎 꿇고 필사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애원했지만 경찰이 출동했다.
그때쯤 아버지와의 소송을 결심했다. 미숙씨는 “내가 아버지의 딸이라는 공인된 증거가 없어 소송을 통해 증명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단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18일 미숙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해외 입양인이 낸 첫 번째 친자확인 소송이다. 법원은 아버지와 미숙씨에게 DNA 검사를 명령했다. 아버지는 두 번이나 미루다 올해 4월 검사를 받았다.
일치율 99.987%. 그는 미숙씨의 친아버지였다. 결과를 들은 이복언니들은 그제서야 재판에 참석하겠다고, 선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심지어 선고 전에 아버지와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승소로 미숙씨는 아버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인지신고(혼인 외의 출생자가 부모 밑에 등록되는 것)를 할 수 있게 됐다. 미숙씨는 다음주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친부는 85세 고령이라 지금이 어머니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온 그녀는 “다른 20만 입양인들이 나처럼 고통 받지 않고 서류 확인만으로도 친부모의 존재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숙씨는 엄마에게 닿기 위한 여정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카라 보스라는 이름 대신 강미숙이라는 한국 이름을 써 줄 것을 언론에 부탁했다. 그래야 엄마가 자신을 알아 볼 수 있기에.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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