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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kg 방호복 입는 데만 15분… “폐쇄 공간에서 쪄 죽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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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kg 방호복 입는 데만 15분… “폐쇄 공간에서 쪄 죽는 느낌”

입력
2020.06.15 17: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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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레벨D 방호복 체험해보니… 땀으로 목욕, 정신까지 혼미

부직포에 비닐 재질 통기성 ‘0’… 장갑·덧신·고글·마스크 중무장

“화장실 못 가 음료 꿈도 못 꿔…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 겪기도”

지난 12일 체험한 방호복 세트. 의료진들이 레벨D라고 부르는 방호복이다. 전신을 감싸는 보호복과 마스크, 장갑, 덧신, 보안경으로 구성돼 전체 무게가 약 3kg이다. 김영훈 기자
지난 12일 체험한 방호복 세트. 의료진들이 레벨D라고 부르는 방호복이다. 전신을 감싸는 보호복과 마스크, 장갑, 덧신, 보안경으로 구성돼 전체 무게가 약 3kg이다. 김영훈 기자

“집에 있는 가족이 혹시 나 때문에 감염될 수도 있으니 힘들어도 방호복을 입을 수밖에 없어요. 이걸 입으면 찜통에 들어간 것처럼 고돼도 바이러스는 차단하거든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요즘 바이러스뿐 아니라 더위와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렇잖아도 푹푹 찌는 날씨에 가만히 있어도 등허리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데,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우주복 같은 방호복으로 온몸을 무장하기 때문이다.

여름철 의료진 건강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난 12일 서울 노원구청의 협조를 얻어 직접 방호복을 입어 봤다. 뙤약볕이 쏟아진 선별진료소에서 체험한 건 고작 3시간이데 땀으로 목욕을 하며 극심한 고통을 맛봤다. “사람을 쪄 죽이는 옷”이란 의료진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날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구보건소 앞 코로나19 선별진료소는 이른 아침부터 진단검사를 받으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보건소와 3㎞ 남짓 떨어진 건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4명이나 무더기로 쏟아진 여파다. 흰색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 2명이 검사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보건소 측이 건넨 보호복을 입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국제표준기준에 따라 레벨A~D로 구분되는 방호복 중 레벨D였다. 호흡기 보호기능은 레벨A가 가장 뛰어나고 아래로 갈수록 떨어지지만 이동성과 착용자 편의 등을 감안해 선별진료소에선 모두 레벨D 방호복을 입는다.

낮은 단계의 레벨D라도 전신 보호복을 입고 그 위에 머리까지 감싸는 보호복을 한 번 더 둘렀다. 손과 발에 장갑과 덧신을 씌우고 마지막으로 고글과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준비가 끝났다. 마스크는 보건용 KF94보다 차단율이 높은 의료용 N95였다. 방호복 착용에만 15분이 걸렸는데, 익숙해진 의료진들은 5분 남짓이면 끝냈다. 방호복 전체 무게는 3㎏ 정도 됐다.

12일 서울 노원구보건소 앞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방문객들이 냉방 시설이 열악한 천막 안에서 검체 채취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12일 서울 노원구보건소 앞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방문객들이 냉방 시설이 열악한 천막 안에서 검체 채취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채 1분도 안돼 고글 안에 습기가 들어찼다. 촘촘한 마스크로 입 주변을 가린 탓에 숨 쉬기가 쉽지 않았다. 산소 유입량이 적어서인지 어느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습기로 시야까지 희미해지자 어느 순간 폐쇄공간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당장 고글과 마스크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매일 방호복을 입는다는 간호사 A씨는 “때때로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때도 있다”고 경험을 전했다.

무더위는 코로나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방호복은 부직포에 얇은 비닐 필름 같은 재질이 덧대어져 통기성이 매우 낮다. 처음 걸친 순간부터 습식 사우나에 갇힌 느낌이었는데, 선별진료소의 냉방용품이라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 때 설치한 구형 에어컨과 소형 선풍기 두 대가 전부였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28도로 전날보다 더위가 다소 누그러졌지만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은 전혀 체감이 안 된다고 했다. 검체 담당 의사 B씨는 “방호복은 겨울과 초봄엔 얼어 죽게 만드는 옷이고 여름엔 땀복처럼 쪄 죽게 만드는 옷”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12일 서울 노원구보건소 앞 선별진료소의 방호복 폐기물 상자. 검체 채취 의료진이 한 시간 동안 무려 12명의 검체를 채취하고 벗어놓은 방호복이 쌓여 있다. 김영훈 기자
12일 서울 노원구보건소 앞 선별진료소의 방호복 폐기물 상자. 검체 채취 의료진이 한 시간 동안 무려 12명의 검체를 채취하고 벗어놓은 방호복이 쌓여 있다. 김영훈 기자

의료진들의 가장 큰 고충은 아무리 더워도 결코 방호복을 벗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에게 방호복 대신 전신가운을 입으라고 권고했지만 의료진들은 그럴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간호사는 “수술용 가운이 편하기야 하겠지만 감염 차단을 확실히 한다는 연구결과가 없다”면서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방호복을 입는 게 마음은 더 편하다”고 했다. 또 다른 의료진은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선 화장실을 갈 수 없다 보니 근무 중 아이스커피 같은 음료는 생각도 안 한다”며 “하루하루 사명감으로 버틴다”고 토로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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