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글이 지닌 무게를 또 한번 느꼈다. 한 달 전 ‘감옥에서 오는 편지’를 신문 칼럼으로 실은 건 그 편지들을 누군가는 확인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알리고 싶어서였다. 수용된 이들이라 얼마나 신문을 읽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편지 숫자가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아니다. 한 주에 한두 통 더 오는 정도다. 그보다 ‘사회부 담당자 앞’ ‘편집국장 귀하’ 같은 수취인이 불분명한 편지가 사라졌다는 게 확실한 변화다. 이제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오는 모든 편지 봉투에는 사회부 소속 특정 기자의 이름이 콕 박혀 있다. 편지지 맨 위에도 공통적으로 ‘칼럼 잘 읽었다’와 ‘한국일보에만 보낸다’고 적혀 있다. 그 중에서 ‘꼭 회신을 바란다’는 한 문장은 특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수용자들의 사정을 감안해도 디지털 시대에 오로지 종이 신문만으로 소통이 이뤄진다는 건 색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이미 밝혔듯 수사기관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을 받은 사건들이 취재와 기사로 이어지는 비율은 극히 적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괜스레 헛된 기대를 전한 건 아닐지 편지가 도착할 때마다 마음 속에 돌덩이들이 하나씩 쌓인다.
답장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일일이 펜을 들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한다. 그래도 몇 통의 편지에 대해선 지면을 통해서라도 간단하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편지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궁금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칼럼 면에 주어진 기회가 한 달에 달랑 한 번뿐이라 많이 늦긴 했다.
먼저 유명 연예인과 관련된 사건을 제보한 이모씨는 반성을 하며 죗값을 치르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편지와 두툼한 자료까지 함께 보낸 이유는 사기를 쳤다는 연예인의 죄를 묻고 싶어서라고 강조했다. 보내준 자료를 토대로 후배 기자가 해당 사건을 파악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은 듯 하다. 변호인과 접촉 중이란 사실은 그 안에서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씨는 취재 포기 의사를 전할 경우 ‘모든 언론사에 해당 자료를 뿌리겠다’고 편지에 적었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전달하겠다.
충북 지역의 또 다른 이씨도 두툼한 서류 봉투를 보냈다. 마약 사건으로 형을 받았고, 2심과 3심이 기각돼 재심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봉투를 뜯어보고 놀랐다. 정갈한 손 글씨로 쓴 장문의 편지에다 수사기관 진술서, 휴대폰 통화내역까지 너무나 세세한 자료를 첨부했다.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군데군데 번호를 매겨 빼곡하게 주석까지 달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지 눈에 선하다. 다만 가족을 포함한 지인들이 쳐놓은 함정에 빠져 억울하다는 사연이라 취재는 어려워 보인다. 재심을 원한다면 변호사와 먼저 상의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밖에 대구의 김모씨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편지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비공개 증인신문제도의 한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의 문제점 등 사회부 기자로서 눈 여겨 볼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극소수이긴 했지만 억울함이나 추가 취재를 바라는 내용이 전혀 없는 편지도 있었다. 부담 가질 필요가 없어 안도의 한숨부터 나왔다. 충남의 한 개방교도소에서 온 편지도 그랬다. 파란색 테두리에 선인장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부터 남달랐다. 발신인은 한 달 전 칼럼을 인용해 ‘일부러 하얗고 밋밋한 우체국 규격봉투를 쓰고 싶지 않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편지를 보낸 이는 ‘구속된 자의 삶에 와서야 용서를 알았고 감사를 알았다. 처음엔 부정했지만 갇혀 있는 시간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에 알게 된 ‘은서하다’란 단어를 활용해 ‘숱한 인연들을 은서했다’라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은서하다는 ‘은혜로써 용서하다’란 뜻의 동사다. 나는 과연 은서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편지를 보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 드린다.
김창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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