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What] ‘창녕 9세 여아 학대’ 등 아동 학대 사건 잇따라
법무부 “민법 915조 친권자 징계권 조항 개정 추진”
“A양이 동네 주민과 함께 손이 퉁퉁 부은 채 흙투성이 옷을 입고 왔다. 손이 왜 그러냐는 질문에 ‘아빠가 뜨거운 프라이팬에 지졌다’고 했다. 못 볼 정도로 끔찍했다.”
지난달 29일 경남 창녕의 한 편의점에 나타난 9세 여자 어린이를 본 상황에 대해 편의점 주인이 지난 12일 언론을 통해 한 말입니다. 주민에 의해 구조되기 전 A양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집에서 쇠사슬로 목이 묶이고 난간에 자물쇠가 채워진 채 이틀 가량 감금됐었다고 하죠. 지붕을 타고 옆집을 통해 탈출한 뒤 야산에 숨기까지 한 A양의 행적에서 학대의 고통을 읽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앞서 천안에서도 아동 학대 끝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4일 충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1일 여행용 가방 속에 웅크린 자세로 장시간 갇혀 있다가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9살 남자 어린이가 3일 오후 6시 40분쯤 끝내 숨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서 드러나지 않았다고요? 근본적인 문제는 학대를 가한 부모라는 이들이겠지요. 이들은 ‘말을 듣지 않아 가르쳐주려고 그랬다’, ‘내 아이인데 훈육 차원으로 이 정도도 안 되나’라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처음에는 꿀밤이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훈육’은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심지어는 앗아가기도 하지요.
이렇듯 훈육을 빙자해 아동을 학대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무부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기존 법에는 보호자, 쉽게 말해 부모 등 아이를 양육하는 이들이 아이를 보호하거나 교육한다는 명분으로 아이에게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민법 915조로 규정돼 있는데요. 법무부가 밝힌 건 민법 915조의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겁니다.
민법 915조는 아동 징계권, 또는 더 짧게 징계권으로 불립니다. 이 징계권이 마련된 건 1958년 민법을 제정했을 때인데요. 법이 생긴 후 수많은 아동 학대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정작 징계권이 개정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지난해 이미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등은 징계권 개정 작업의 삽을 떴지만, 실제 변화가 없었을 뿐입니다. 천안과 경남 창녕 등에서 연달아 아동 학대 사건이 이슈화하자 속도가 붙은 셈이지요.
개정 범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무부는 아동 인권 전문가와 청소년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유관 기관과 간담회를 통해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습니다. 지난해와 달라진 점은 이번만큼은 신속하게 해결하겠다는 의지인데요.
이번 징계권 개정에 기대가 실리는 이유는 사회 통념의 변화도 한 몫 합니다. 2018년 복지부의 ‘아동 종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부모 10명 중 6명은 ‘자녀를 키울 때 체벌은 필요 없다’는 의견을 냈다고 해요. 과거 ‘사랑의 매’로 불리며 일정한 정도의 체벌은 필요하다는 인식과는 조금 달라진 양상이죠.
전문가들은 ‘꽃으로도 아이를 때릴 권리는 없다’고 강조하지요. (관련기사 바로보기: 꽃으로도 아이를 때릴 권리는 없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5일 본보 칼럼을 통해 “만약 부모에게 부여된 징계권을 남용할 경우에 그것을 적절하게 모니터링 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면 아동 학대는 예방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동권리보호단체들도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입을 모아 외치는데요. 지난해 세이브더칠드런ㆍ굿네이버스ㆍ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권리보호단체들은 징계권 삭제를 위한 서명운동 ‘체인지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를 통해 인식 개선을 유도했고요. 서명에 참여한 6,203명의 간절한 바람은 국회와 정부에 전달된 상태입니다.
한국의 징계권을 두고는 유엔(UN) 아동권리위원회도 지난해 10월에도 “모든 체벌에 대해 명시적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며 징계권 삭제를 권고한 바 있지요. 여기에 징계권 개정 가능성이 급물살을 탄 만큼 실제 개정 범위와 성공 여부에 더욱 큰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른들의 의지가 필요할 겁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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