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다, 한국인의 탐닉] <3>레트로, 복고풍 감성에 젖다
싸구려 티셔츠부터 명품 고가구까지
없는 게 없는 동묘 벼룩시장 매력에
젊은층도 ‘오래된 보물찾기’ 동참
점포 임대료도 10년 만에 6배 껑충
바닥에 놓인 티셔츠는 한 장에 달랑 2,000원, 걸려 있는 건 5,000원이었다. 한데 바로 뒤쪽 가게에 진열된 철제 서랍장은 싸구려가 아니었다. 가게 주인은 “1940년대 프랑스 명품으로 파리에서도 1,0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1,000만원을 호가하는 가구부터 2,000원짜리 티셔츠가 공존하는 이곳은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동묘 벼룩시장이다. 상품 종류와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소비자 연령대도 다양한 벼룩시장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통점은 ‘레트로’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숭인동 동묘 옆의 한 노점. 20대 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모두 허리를 꺾은 채 바닥에 놓인 ‘옷 무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성인 무릎 높이까지 쌓인 옷들은 대부분 생산된 지 10년이 넘었다. 일부는 ‘출생 연도’가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대학생 김혜지(22)씨는 이곳에서의 옷 구매를 ‘보물찾기'에 비유했다. 그는 “여기 온다고 무조건 마음에 드는 옷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며 “예쁘고 멀쩡한 옷을 찾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은 사이즈가 맞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씨가 능숙하게 바지 하나를 집어 들어 건네자 노점 주인은 “허리 사이즈가 학생한테 딱 맞네”라고 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지불한 김씨는 바지에다 이미 골라 놓은 티셔츠 등 총 세 벌을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갔다.
의류가 동묘 벼룩시장의 전통적인 인기 상품이라면 최근 뜨는 품목은 LP다. 자칭 ‘LP 수집가’ 김성수(가명ㆍ62)씨는 “음악을 전공하는 딸에게 LP를 알려 주려고 오늘 처음으로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설명에 이어 딸 김모(19)씨도 “음원으로 들을 때와 달리 LP에선 확실히 옛날 감성이 느껴진다”며 공감했다. 이 부녀는 1986년 발매된 팝가수 빙 크로스비의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단돈 3,000원에 구해 갔다.
소모품이 아닌 소장품도 인기다. 골동품 가게 ‘만물상단’ 대표 전진규씨는 “요즘엔 맞벌이 부부들이 와서 재테크용으로 디자이너 가구를 구입하는 추세”라며 “이런 가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른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 가구는 100만원부터 1,000만원까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가구 외에도 카페 등에서 소품으로 활용하는 근현대 물건들도 고가에 거래된다.
동묘 벼룩시장이 ‘레트로의 성지’로 유명해지면서 임대료는 껑충 뛰었다. 권리금은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최소 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동묘 시장엔 이런 점포가 500~600개나 된다. 시장 상가번영회 총무 조상숙(55)씨는 “10평(약 33㎡)짜리 가게의 10년 전 월세가 50만원이었는데 요새는 300만원까지 치솟았다”면서 “동대문ㆍ홍대 장사꾼들이 가게만 나오면 미리 선점하려고 난리”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글ㆍ사진=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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