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자 A(56)씨는 지난 4월 10년간 일해온 고객으로부터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이 같은 해고 통보는 이어졌다. 수입이 줄자 A씨는 생계를 위해 정부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알아봤지만 ‘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고용계약서가 없는데다, 주로 현금으로 일당을 받아 소득이 줄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워서다.
신종 코로나 유행이 계속되면서 가정을 방문해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의 생계도 크게 힘들어졌다. 16일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에 따른 고강도 거리두기가 시작된 지난 3월 가사노동자들의 월평균 수입은 지난해(107만400원)의 60.0%(64만2,000원)에 그쳤다. 4월 수입 역시 지난해의 62.1%(66만5,000원)에 그쳤다. 지난 4월 27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약 한 달간 가사노동자 1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소득이 줄어든 이유로는 ‘고객이 오지 말라고 해서’라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54.7%). 신규고객이 없어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도 10.0%에 달했다. 소득이 감소한 가사노동자의 54.7%는 지출을 줄여 생활을 이어갔지만, 생계난으로 대출을 받은 경우도 14.8%에 달했다. 한편 신종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 일을 하면서 동선공개를 요구받거나, 가족 중 특정 종교가 있는지 묻는 등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17.2%였다.
이처럼 가사노동자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지만, 이들은 정부가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조차 받기 어려운 처지다. 현행법이 가사노동자를 ‘가사사용인’으로 별도 분류해 근로기준법은 물론 최저임금법, 고용보험법 적용에서도 제외하면서 그간의 고용을 증명할 계약서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임금을 ‘사업자’가 아닌 개인에게 직접 받다 보니 근로소득 감소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다. 고객에게 ‘노무미제공확인서’를 받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가사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20대 국회에 발의됐지만 단 한차례 논의 후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는 21대 국회에 법안을 재발의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가사노동자들은 재난상황에서도 사회안전망의 완전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이들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지킬 법안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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