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의무화ㆍ계약 갱신 청구권제ㆍ전월세 상한제
여당 ‘임대차 3법’ 국회 개원 하자마자 재발의
임대료 통제책 펼친 독일, 임대주택 수급 어려움 겪기도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거주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5> ‘임대차 3법’은 지속적으로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세입자의 어려운 상황을 살피고 법적으로 보호하려는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선진사회일수록 포용적이며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소위 ‘임대차 3법’은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발의된 3가지 세입자 보호 관련 제도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3가지 제도는 한 묶음으로 하기에는 지향점이 다소 다르다. ‘임대차신고제’는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인데 비해, ‘전월세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 보호를 직접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정 대상이 되는 법률도 전자는 ‘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인 반면, 후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물론 투명성 제고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여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 권익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임대차 3법의 본질적인 의미와 기대효과, 예상되는 부작용을 짚어보자.
◇투명성 제고는 피할 수 없는 흐름
임대차신고제는 서민주거 안정보다는 시장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다. 사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임대차계약 신고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서는 임대차계약이 체결되면 국세청(IRAS)에 필수적으로 보고를 하고 전자인증(e-stamp)을 받은 후 임차인은 인지세를 내야 한다. 모든 임대현황이 자동으로 국세청에 업데이트되며 임대인은 향후 임대소득세를 내게 된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임대보증금을 제3의 기관에 예치함으로써 자동으로 신고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영국은 정부가 지정한 보증금 예치기관에 예치하거나 보증금반환보험을 들어야 한다. 호주의 경우 RBO(Rental Bonds Online)라는 임대보증금예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민간임대인은 반드시 RBO에 등록하여 계정을 받아야 하고 임차인은 보증금 상세 내역을 RBO에 보고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매계약과는 달리 임대차계약 신고 의무가 없어 전체 임대주택의 77.2%는 현황 파악이 불가능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민간에는 2018년 8월 기준 약 673만호의 임대주택이 있지만 확정일자나 세액공제제도를 통해 153만호만 임대현황이 파악된다. 약 530만호에 이르는 임대주택의 정보 알 수 없어 임차인과 임대인들은 불공정, 사기 계약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전월세 시장의 사기는 매매시장에 비해 더 치명적이다. 임차인들은 대부분 자산이 부족한 서민층이므로 보증금을 떼이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차신고제가 정착되면 전월세 사기는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다. 가령 다가구 주택에 전세로 들어가려고 하는 경우 신고제가 시행돼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면 현재 해당 주택에 체결된 계약 상세내역을 조회할 수 있다. 만약 기존 세입자들의 보증금 총액이 해당 다가구주택의 매매 시세와 맞먹는다면 전세계약 체결을 하지 않음으로써 보증금을 떼일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또 기존 세입자들의 보증금과 월세 수준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과도한 임대료를 요구할 경우 이에 대해 임차인이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정부의 매매실거래가 제공이 매수자의 협상력을 높이고 있는 이치와 같다.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 제고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우선 임대인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인센티브가 필수적이다. 신고제는 필연적으로 임대소득 투명화로 귀결되며 임대인에게는 추가되는 세금이 달가울 리 없다.
일부는 세입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대료를 일부 상승시키는 효과는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임대소득 비과세 범위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서민 임대인의 부담을 완화하고 저소득층의 임대료 상승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또 임대차 계약과 신고, 연말정산 등 관련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임대등록시스템으로 운영 중인 ‘렌트홈’의 기능을 확장하여 전자계약을 하면 자동 신고가 되게 하고 연말정산 시 임대소득이나 월세 납부액이 간소화시스템에 연동되도록 하여 제도시행에 의한 불편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임대료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최근 발의된 임대료상한제 관련 3개의 법률개정안(윤후덕, 박주민, 백혜련)의 주요 내용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1회 또는 무기한(박주민 의원안) 부여하고 2년마다 갱신할 때 5% 이내에서 임대료 인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가 정리한 임대료상한제의 단계를 보면 지금 발의한 내용은 3세대 임대료규제로서, 초기임대료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하되 인상률을 제한하는 구조이다. 현재 독일, 프랑스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1세대 임대료규제는 명목임대료를 시장임대료 이하로 동결하는 방식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도입되어 전후 점차 폐지되었는데 임대료가 극히 높은 뉴욕에서는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2세대 임대료규제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물가관리차원에서 미국 주요도시에 도입되었는데, 물가상승률이나 수선유지비 등에 연동하여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1세대에 비해 유연화된 형태였다.
여하튼 3세대로 오면서 초기 임대료를 자율화하고 인상률만 제한하게 된 것은 1~2세대 임대료상한제가 갖는 부정적 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임대주택 공급량 감소이다. 영국의 경우 1910년 이후 1980년대 말까지 임대료규제가 시행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민간임대 거주가구 비중이 90%에서 10%이하로 대폭 하락하였다. 그러나 1989년 시행된 주택법(The Housing Act 1988)에서 임대료규제를 철폐하고 임대기간규제를 완화하자 2008년에는 75%가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임대료상한제는 임대주택 공급을 감소시켜 수급 불안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임대차시장은 매매시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한 부분에서의 정책변화는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월세 인상률을 제한하게 되면 저렴한 주거비용을 지불하면서 자가마련을 늦추는 가구가 증가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면 전월세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임대료수익의 감소로 임대주택 공급은 감소하면서 수급불일치가 심해질 수 있다.
임대료통제를 강력하게 실시하는 독일의 최근 예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도이체방크의 2020년 베를린 주택시장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1월 주택건축 허가건수가 1,180호로 6월 2,000호에 비해 대폭 감소하여 2015년 1월 이후 최저치였는데, 주택당 방수는 2.5에서 2.8로 증가하였다. 강력한 임대료규제가 이어지자 방수가 적은 임대주택용 주택 건설이 줄어들고 있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또 2009년과 2019년 사이 주택부족으로 기존임대료는 65%, 신규주택임대료는 75% 상승하였는데, 임대료 통제가 잠시 멈추었던 기간에 더 급격하게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임대료 규제 이후 나타날 우리나라 상황을 예를 들어 전망해보자. 전세가 3억원인 주택 A의 매매가가 5억원이라고 하자. 2년 후 매매가가 6억원으로 20% 올랐는데, 전세가는 5% 인상률 상한을 적용 받아 3억1,500만원이다. 인근 신축 주택 B는 매매가 6억원에 전세가 4억원으로 시세가 형성되었다고 하자. 주택을 매입하여 임대업을 하려 한다면 당연히 주택 B를 선택할 것이다. 주택 A는 투자대비 수익률이 낮으므로 실거주 목적인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결국 주택 A는 임대시장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재고주택의 상당수는 매매시장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1900년대 영국과 최근 독일에서 나타난 것이다.
임대료의 통제는 임차인 간의 수평적 형평성을 해칠 소지가 있다. 계약갱신 청구권과 인상률 제한을 융합하여 적용하면 기존 임차인에게는 안정적인 주거서비스가 제공되는 반면, 신혼부부나 분가가구 등 새로 진입하는 임차인의 기회는 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임대주택 재고까지 감소한다면 임차인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기존 세입자들도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장기 거주한 기존 세입자들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가려 한다면 4년 내지 그 이상의 시장임대료 상승분을 단숨에 마련해야 하므로 거주이동에 더욱 제약을 받게 될 소지가 있다.
◇공공임대확대와 병행하면서 점진적으로
임대차 3법은 신고제부터 단계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임대차신고제는 투명성을 확보하면서 부가적으로 임차인과 임대인을 보호할 수 있는 중립적인 제도이다. 반면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제는 단기적으로는 임차인을 보호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임대차신고제를 우선 시행하여 임대시장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4분위 이하 저소득층의 민간 임대차시장 실태를 파악하고 그 기초 위에 임대료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공공임대의 지속적인 확대공급도 필수적이다. 임대차시장 규제로 인하여 민간임대 재고가 축소된다면 그 충격을 완화해 줄 장치로는 공공임대가 가장 적절하다. 바우처나 임대료보조도 효과가 있겠으나 절대적으로 재고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임대차 3법은 공공임대공급 확대계획과 병행하여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저소득층 대상의 민간임대주택부터 1회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적용하면서 그 효과를 면밀히 관찰한 후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적절해 보인다. 중산층 이상의 임차인들은 다양한 대안이 있으므로 중장기적으로 편입하여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뉴욕시의 경우에도 월세 2,000달러 이하인 주택에 대해서 임대료안정화(rent stabilization)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 않은가.
목적이 옳다고 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정의롭더라도 부주의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주거안정은 어느 정권에서나 뜨거운 감자다. 그만큼 위험하다. 당위성에만 매몰되어 정치적 이슈로 만들기 보다는 어떻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때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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