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아는 사람인 것 같아.”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고 있다가 거실로 뛰어 들어간 건 그 대사 때문이었다. 그냥 켜놓은 TV에서 스치듯 들린 말, 하지만 듣는 순간 내장까지 울리는 진폭이 느껴졌다. 어디에 둔지 몰라 구석구석을 갈아엎으며 찾아 헤맨 물건이 그냥, 갑자기, 쑤욱, 앞에 있을 때의 느낌! 늦은 밤이었고 나는 빨래를 걷고 있었다. 잠들기 전 골고루 수분기가 걷어진 잘 마른빨래를 걷는 건 내 오랜 습관이었다. 오늘 못 걷으면 내일 걷어도, 귀찮으면 며칠 뒤에 걷어도 사실 아무 지장 없는 일이었다. 빨래의 두께와 무게에 따라 마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장 두꺼운 게 다 마르면 그때 한꺼번에 걷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일일이 만져보며 마른빨래는 당일 밤에 걷어왔다. 그래야 편했다. 하루 치의 삶을 거둬들이는 시간, 정갈해진 빨래를 걷어 각 맞춰 개킨 다음 각자의 위치로 입성시켜야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함에 나는 취약했다.
어떻게 하면 자기가 행복한지를 안다니! 거대한 무엇을 발견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경건해진 나는 걷던 빨래를 안은 채로 TV 앞에 앉았다. 청춘 남녀가 어떤 건물 앞 길거리 슈퍼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었다. 화면이 당겨지자 극 중 지방 이름을 앞세운 군청 건물이 보였고 목에 사원증을 건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건물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사원증은 남자 목에도 걸려 있었다. 서울과는 다른 하늘을 담으려 애쓴 제작진들의 의도가 그대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화면에 가득 담겼다. 여자가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과 정갈한 사원증과 여자의 놀란 눈,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빚어내는 화면이 너무 깨끗해 나도 모르게 숨이 참아졌다. 내 계산이 맞는다면 그 장면은 거의 일 분간이나 지속되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를 향해 웃는 남자의 미소가 화면 속 하늘만큼이나 환했다.
그때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것처럼, 불만과 의구심이 절반씩 깔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초중고 내리 십이 년을 이 고장 일등이었고, 그래서 저 군청 앞과 우리 학교, 우리 동네 어귀에 현수막이 걸리며 S대 법대에 합격했어. 네가 서울로 떠나던 날 너희 부모님은 물론이고 온 동네 사람들은 같은 상상을 했지. 그런데 너는 공무원 시험을 치렀고 고향으로 내려왔어. 뉴스를 보면 대학 졸업하고도 변호사가 되겠다, 의사가 되겠다며 달려드는 얘들도 천지던데...”
그때였다. 적어도 내 눈엔 그 드라마 최고의 장면이 나타났다.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나란히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틀었다. 마주보는 모양새가 되었을 때 여자의 시선은 남자의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을 향해 있었다. 남자의 눈이 여자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었던 건 말할 것도 없다. 명대사는 당연한 순서였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아는 놈이라서 좋아. 그걸 실천할 수 있어서 더 좋고.”
클로즈업 되는 여자의 눈이 반짝였다. 그 둘은 주인공은 아니었다. 약간은 몽환적이고 운명적인 주인공 남녀의 캐릭터를 살려 주기 위해 주변에 배치해 놓은 친구들 중 하나로 남자는 고등학교 동창인 여자를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 평상에 걸터앉아 흔들리던 여자의 종아리가 가지런히 모아지며 움직이지 않는 장면이 보였다. 드라마는 필요 없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두 다리가 정지된 여자를 보는데 안에서부터 흐뭇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저 두 사람은 연인이 되겠구나...
그날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빨래를 마저 걷어 개켜 넣고 다림질까지 다 하고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아는 사람... 무슨 큰 숙제라도 받은 사람처럼 가슴이 뛰었다. 내가 했었던 좋은 일과 옳았던 일들을 써보았다. 그때 나는 기분이 좋았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는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때의 기분 좋음과 사람들에게 들은 칭찬이 나를 행복하게 했는지에는 쉽게 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했기 때문에 맘이 편했고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었던 일들도 들춰보았다. 그것도 안 했을 때의 불편함과 싸우는 수고를 덜어 준 것 정도로 느껴졌다. 그랬다. 나는 한번도 ‘나의 행복’에 대해선 공부해 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내가 덜 불행한지만 열심히 익혀 온 사람이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후회나 자책을 피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덜 불편할지, 그런 요령 말이다. 불편하지 않으면 적어도 불행하진 않았다. 불현듯 불편한 마음을 벗으려고 행복하지 않은 일을 많이도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것과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다르다. 그것의 삶의 질 역시 다를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 매일 아침에 눈 뜨면 반드시 하나는 생각해 내고서야 침대에서 일어난다. ‘행복 숙제’라고 명명한 그것은 무엇을 해서 불행하지 않는 거 말고, 무엇을 하면 내가 오늘 진짜 행복할지를 아는 것이다. 그 드라마가 빛난 이유다.
서석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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