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ㆍ15 공동선언 19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선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마침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14년 만에 처음 북한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정 부의장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판이 기존 남북미에서 남북미중으로 커질 상황에서 통일부가 “북미 사이 교량 역할을 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도록 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통일부 장관이 축사만 하고 다니는 건 비정상”이라고 꼬집었다.
□ 마오쩌둥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통일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정 부의장은 자타 공인 북한 전문가다.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냈고 뒤이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차관직을 유지해 장관까지 올랐다. 통일부 출신 장관은 그가 처음이었고 그 일을 노무현 정권에서도 맡았다. 햇볕정책으로 남북이 화해 무드였지만 그때도 남북이 결정한다고 협력이 다 가능한 건 아니었다. 미국의 양해가 필요했고 그를 얻어내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다. 거듭 설득하고 안 되면 치고 나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을 따냈다는 게 지난 1년여 정 부의장이 반복해 온 회고담이다.
□ 지난해 2월 북미 하노이 노딜 직후 취임한 김연철 장관이 남북관계 악화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 김 장관 역시 학자이면서 오랫동안 남북 관계 현장에 섰던 전문가이니 축사만 하고 다녔을 리 만무하다. 우선은 북미 대화가 내리막길을 걸을 때 장관을 맡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애초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연동된 남북 관계가 통일부만 열심히 한다고 풀릴 일도 아니다. 김 장관의 역할이 기대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동안 외교부는, 청와대는 무얼 했는지도 물어야 한다.
□ 김 장관이 인제대 교수 시절 낸 ‘협상의 전략’이라는 책에 빌리 브란트의 독일 통일 이야기가 나온다. 브란트는 그의 보좌관이자 동방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진 에곤 바르와 함께 동ㆍ서독 관계를 미소 경쟁 구도에서 분리하려 했다.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1969년 바르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는 외교정책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한다. 이듬해 방미해 키신저를 만나서는 동ㆍ서독 관계를 소상히 설명한 뒤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보하러 온 거”라고 말했다. 다음 통일부 장관을 포함해 쇄신된 안보라인이 곱씹어 볼 일화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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