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일도 벌이고 트러블 메이커 돼야 文대통령 운신의 폭 생기는데”
여권선 “역할 못 해” 靑 불신론… 통일부선 “권한 없고 책임만” 반박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17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전격 사의 표명을 두고 18일 청와대와 통일부에선 이런 반응이 나왔다. ‘왜 이상하지 않은지’에 대한 원인 진단은 달랐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김 장관이 과감하게 움직일 것이란 기대에 못 미쳤으니 물러나는 것이 맞다’는 쪽으로 해석했다. 통일부는 ‘김 장관은 권한은 별로 없으면서 책임만 떠안았다. 중도 퇴진은 예정된 결말’이라고 아쉬워했다. 양쪽 얘기를 종합하면, 청와대의 불신과 통일부의 불만이 누적된 끝에 김 장관 사의 표명으로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까지 김 장관 사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여권 기류는 달랐다. 김 장관이 “남북관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양새가 된 데 대해 ‘바람직한 결정’이라는 평이 주류였다. 그간 여권엔 김 장관이 기대 만큼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여권은 한반도 훈풍이 불던 2018년을 별다른 과실 없이 흘려 보낸 주된 원인을 ‘관료 출신’인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의 소극성에서 찾았다. 그래서 학자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을 깊이 이해하는 김 장관을 내세웠다. 김 장관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을 바랐는데, 김 장관 역시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여권의 평가다.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에겐 ‘트러블메이커’가 필요했다”며 “통일부가 일도 벌이고 사고도 쳐야 문 대통령에 운신의 폭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나 김 장관 주변의 말은 결이 다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대북 정책의 주요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구조 속에서 김 장관 ‘개인기’가 아무리 훌륭한들 무슨 소용이냐는 반론이 많다. 이달 16일 국회 외교통일위 전체회의에서 김 장관이 대북전단 살포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고 “통일부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의 권한이 부여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닿아 있을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김연철 장관이 갈등을 빚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안보실이 결정하면, 통일부는 따른다’는 게 원칙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남북관계 악화 원인을 통일부에서 찾는 건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만 통일부 책임론이 부각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관광은 제재에 저촉되지 않아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고 언급한 뒤로 통일부가 관련 사업에 속도를 냈는데, 북한이 냉담하자 안보실이 ‘통일부가 너무 무리했다’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 보안 등 문제 때문에 남북 문제 논의가 안보실 중심으로만 이뤄진 것이 김 장관의 무력감을 키웠다는 뒷말도 오르내린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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