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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사려 편의점서 도시락… "내 안목 보여주는 '내돈내산'에 뿌듯"

입력
2020.06.25 04:30
수정
2020.06.25 08:5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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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는 왜 명품시장 '큰 손'이 됐나
과거 강남에 즐비했던 빈티지숍
홍대 등 젊음의 거리로 둥지 옮겨
노동은 소비하기 위한 수단일 뿐


홈쇼핑 쇼호스트 임세영씨가 유튜브를 통해 서울 합정동의 한 명품 빈티지숍을 소개하고 있다. 동영상 캡처

홈쇼핑 쇼호스트 임세영씨가 유튜브를 통해 서울 합정동의 한 명품 빈티지숍을 소개하고 있다. 동영상 캡처


"버버리 트렌치 코트가 30만원대에요. 잘 고르면 희귀한 명품을 싼 값에 고를 수 있어요."

백화점 매장에서 200만원대인 버버리 트렌치 코트가 30만원대라니. 혹시 '짝퉁' 아니냐고 의심에 찬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 족히 50년은 된 1970년대 출시된 트렌치 코트를 말하는 것이니까. 최근 유튜브에는 명품 빈티지숍을 탐방해 가격이 적당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 명품 빈티지숍에선 1,000만원을 호가하는 '샤넬 트위드 재킷'이 90만원대, 500만원대인 '루이비통 가죽 원피스'가 80만원대, 80~100만원대 '샤넬 귀걸이'가 20만원대 등 시중 가격에서 최대 10분의 1 수준에 거래된다. 가방, 의류, 액세서리에서부터 테이블이나 접시 등 인테리어 소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예전 같으면 서울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등 강남에 즐비했을 빈티지숍의 둥지는 지난 5~6년 사이 서울 합정동이나 성수동 등 소위 젊음의 거리에 더 많아졌다. 특히 홍대 인근에는 한 집 걸러 한 집이 빈티지숍일 정도로 20, 30대들의 신흥 놀이터로 자리했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신이 태어난 해의 명품을 구매하고 착용하면서 즐거움을 찾곤 한다. 직장인 이모(31)씨는 "빈티지숍의 강점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명품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남들은 없는 나만의 명품 빈티지룩을 완성하는 게 하나의 재미"라고 말했다.


백화점의 큰 손이 된 2030

중견기업에서 부장급으로 근무하는 홍모(49)씨는 최근 고등학생 딸의 생일선물로 4만원대 '샤넬 립글로스'를 선물했다. 평소 메이크업 제품 중 하나인 쿠션 콤팩트와 립글로스로 가볍게 화장을 하는 딸이 원하던 선물이었다. 홍씨는 "아내에게도 해보지 못한 선물"이라며 "우리 세대와 달리 10대들에게 명품 브랜드는 어렵지 않고 친숙한 존재인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유통업계에선 10대부터 20, 30대까지 밀레니얼과 Z세대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이들이 백화점의 매출을 쥐고 있는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샤넬의 가격 인상 소식에 이른 아침 백화점 문이 열리기도 전에 줄을 서서 '오픈런'을 실행한 이들도 주로 2030세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소비도 통하지 않았다.

젊은 층의 이런 소비 행태는 최근 백화점 매출 현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샤넬'의 가격 인상 전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샤넬'의 가격 인상 전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신세계와 롯데,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2018~19년 연령대별 명품 매출 신장률을 분석한 결과, 20~50대 중 20대의 명품 소비가 가장 높았다.

특히 롯데백화점의 명품 매출 신장률은 눈부시다. 지난해 명품 매장을 대대적으로 새단장하면서 20,30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20대와 30대의 2018년 명품 매출 신장률은 전년에 비해 각각 9.2%와 2.1% 올랐는데,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20대는 52.8%, 30대는 41.2%로 급증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20, 30대의 올 1~5월 명품 매출 신장률이 지난해 전체 신장률보다 높았다. 지난해 20대와 30대 명품 매출 신장률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8.8%, 19.8%였지만, 올 5월까지 매출 신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20대는 36.5%, 30대는 26.3%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2030세대의 소비 성향이 고가의 가방이나 시계 등에서 벗어나  세분화되고 다양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에게 명품은 고가의 가방이나 시계, 의류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주얼리, 신발 등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품목으로 확장돼 신규 진입 고객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만 해도 명품 브랜드의 메인 매장 이외에 신발과 시계, 액세서리 등의 전문 매장을 따로 만들어놓았다. 세분화된 품목과 그에 따른 매장은 접근성이 용이해 젊은 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런 강점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국내 전체 백화점 중 매출 1위로 올려놓았다. 신세계백화점 한 관계자는 "2018년에는 100만원대 스니커즈가 인기였는데, 지난해엔 90~100만원대 주얼리, 블루투스 이어폰 등이 많이 판매됐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백화점 3사의 연령별 명품 매출 신장률

국내 주요 백화점 3사의 연령별 명품 매출 신장률


"노동보다 소비에 더 가치를 둔 세대"?

대학생 박모(26)씨는 최근 80만원대 '구찌 스니커즈'를 장만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용돈을 아껴쓴 덕분이었다. 박씨에겐 일명 '내돈내산(내 돈으로 주고 내가 산)' 명품이 더 있다. 30만원대 '루이비통 가죽 팔찌'와 80만원대 '샤넬 카드지갑'이다. 박씨는 "생일날 친구들 앞에서 구찌 신발을 '언박싱(포장된 상품을 뜯어보는 행위)' 했는데 박수를 받았다"며 웃었다.  

최근 MZ(밀레니얼과 Z세대의 합성어)세대 사이에선 내돈내산 리뷰가 유행처럼 번져 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인터넷 블로그나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타인에게 받은 선물이 아니라 '내 돈 주고 내가 산 상품'을 보여주고, 제품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이때 언박싱이나 '하울(상품의 구매 후기 및 품평)'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고가의 명품들을 주로 소개한다. 비싸게 산 물건을 과시하듯 보여주고, 구매할 때의 팁이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이다. 소비에 더 초점이 맞춰진 풍경이다.  

노동보다 소비에 더 가치를 두는 성향이 뚜렷해진 셈이다.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등의 행위가 소비를 위한 노력으로 재평가되는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요즘 세대에게 노동은 자신의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에 한정된 개념"이라며 "명품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는 행위는 더 이상 비판 대상이 아닌 칭찬받는 시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명품 소비를 두고 비난의 대상이 됐던 예전 풍토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부의 과시로만 여겨졌던 명품 소비가 이제는 자신의 취향이나 안목 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은희 경기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결혼과 집 장만, 자녀 교육 등 희생이 강요되는 사회, 문화속에서 자랐지만, MZ세대는 자아성취, 자기만족의 문화를 익히고 배운 터라 그것이 그대로 소비 문화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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