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북 모두 향해 변화 촉구하는 ‘전략적 침묵’ 분석도
청와대는 24일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6월 들어 9ㆍ19 남북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사하며 연일 대남 공세를 취했을 때와 다르지 않다. 외부 정세가 다소 흔들리더라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진전시켜나가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전략적 침묵’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이날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방침에 이어 북한 군부가 최근 설치한 대남 확성기 10여대를 철거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관련해 공식 언급을 자제했다. 한반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던 찰나에 나온 북측의 유화 제스처일 수 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북측의 잇단 도발에도 지금껏 공식 반응을 극도로 자제해 왔기도 하다. 17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원색적인 비난을 한 데 대해 “몰상식한 행위다. 사리분별을 못하는 언행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 유일한 맞대응이다.
대북 저자세라는 국내 비판여론이 일 가능성이 뻔한데도 이를 감내하는 결정을 한 것은 의도적 침묵이었다. 남북이 이른바 ‘말폭탄’에 맞대응을 하면 불필요한 긴장이 조성되고, 결국 될 일도 안 되게 됐던 앞선 정부들의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하진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북한이 냉ㆍ온탕을 오가는 대남 전략을 택한 것은 미국 대선(11월)을 겨냥한 전략적 포석인 동시에 북한 내부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판단도 반영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이 처한 전략적 딜레마 상황 또한 감안했다. 미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APCSS)의 조성민 교수는 “북한 내부 정치적으로 국론 통합을 위한 군사적 긴장 강화 필요성이 커지는 동시에,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후폭풍 최소화를 위한 외교적 해법 찾기 요구 또한 커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 문 대통령으로서는 전략적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일 수밖에 없다. 침묵 자체가 북한과 미국을 모두를 향한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서는 '신년 기자회견을 포함해 줄곧 제안해 온 남북협력 구상을 수용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국제 제재와 무관하게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설득하는 묵언의 호소가 될 수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끝내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갈지 북한과 미국의 선택을 묻는 뜻도 있다”며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결국 평화라는 목적지로 이끌어가겠다는 것이 한반도 운전자로서 우리 정부의 바꿀 수 없는 행동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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