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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박스째 가져와" 갑질... 대중교통 '마스크 의무화' 한 달 풍경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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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박스째 가져와" 갑질... 대중교통 '마스크 의무화' 한 달 풍경 보니

입력
2020.06.24 17:13
수정
2020.06.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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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미착용 등 민원 지하철 7,972건... 버스는 187건?
"버스, 지하철은 보는 눈이라도 있지" 택시기사도 속앓이

시민들이 지난 18일 마스크를 쓴 채 줄을 서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이 지난 18일 마스크를 쓴 채 줄을 서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지난달 26일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 됐지만, 버스운전사ㆍ지하철 역무원과 일부 시민들의 충돌은 끊이지 않는다. 밖으로는 ‘K방역’을 통해 국격을 높였다지만 그 이면은 초라하고 부끄러운 구석들이 적지 않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한 달을 앞두고 그 안을 들여다봤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역무원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개찰구를 통과한 승객에게 마스크 착용 의무를 고지하자 이 승객은 고함을 질렀다. "마스크 미착용 시 탑승 제한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규정을 갖고 오라!"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해도 승객은 막무가내로 나왔다. 역무원이 사무실에 있던 미사용 마스크를 한 장을 갖다 바친 뒤에도 이 승객의 황당한 언행은 멈출 줄 몰랐다. "당신이 만진 마스크는 싫다. 마스크 박스째로 가져오라!"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마스크 착용 요구에 거세게 반발하는 경우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있지만 경찰의 현장 출동 전까지 상대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2일까지 마스크 착용을 놓고 벌어진 승객과 버스ㆍ택시운전기사 그리고 역무원간 시비는 신고된 건수만 840건에 이른다.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승객에게 하차를 요구하자 어떤 기사는 목이 물어 뜯기는 등 폭행을 당했다.  '적반하장족'들 난동에 대중교통 종사자들이 때 아닌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버스운전사 A씨도 그 중 하나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께 서울 여의도역에서 한 승객을 태운 뒤 곤욕을 치렀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이 승차하려 하자 “마스크를 써야 탑승할 수 있다”고 제지한 게 화근이었다. 승객은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착용한 뒤 버스에 올라 다짜고짜 사과를 요구했다. 계도 기간에 마스크 미착용을 이유로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게 이유였다.

승객의 화로 버스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자 주변 다른 승객들이 나섰지만, 일은 더 커져만 갔다. 버스운행사 관계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 승객과 그 승객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걸 지적하고 '아무 잘못 없는 운전기사에 왜 뭐라고 하느냐'고 따진 다른 여성 승객 사이 시비가 붙었다"며 "이 과정에서 여성 승객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 승객을 먼저 쳐 남성 승객이 고소해 경찰에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21일까지 마스크 미착용 관련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은 7,972건이나 됐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이 전동차에 탔으니 빨리 조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루 평균 209건의 마스크 미착용 관련 민원이 발생한 것이다. 직원들이 단속한다고는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개찰구를 통과한 뒤 전동차나 역사에서 마스크를 벗거나 콧등까지 올리지 않고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승객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 18일 4호선 충무로역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30대 남성 2명이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 시민과 실랑이를 벌이다 출동한 경찰을 밀쳐 현장에서 체포됐다. 서울시에도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버스 승객 마스크 미착용을 시정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이 187건이나 들어왔다.

대중교통 종사자들은 일부 승객들의 돌발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주변에 다른 승객들이 있는 버스나 지하철 상황은 택시 운전기사에 비하면 차라리 나은 편이다. 개인택시기사 최모(60)씨는 "버스나 지하철은 그 상황을 지켜보는 눈이 많고, 또 실랑이가 붙어도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있지 않느냐”며 "택시는 승객과 시비가 붙으면 기사 혼자 감당해야 해 마스크 착용해달라는 소리를 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한 달이 지났지만, 끊이지 않는 적반하장객들의 횡포에  ‘자포형’ 대중교통 종사자도 등장한다.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정모(57)씨는 "시비가 붙으면 운전사만 힘들다"며 "마스크 안 쓴 손님이 차에 오르면 회사서 받아 놓은 마스크를 건네고 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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