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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치 넘은 소음 일상 파괴" 12년 소송 끝 700m 방음벽 합의

입력
2020.07.15 09: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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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인정돼도 "참고 지내라" 일쑤
"정부 지자체 법원 심각성 인식해야"

“시도 때도 없는 굉음에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을 수 없고요. 이사 오기 전에는 소음이 이렇게까지 일상을 망쳐버릴지 몰랐습니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준형(39)씨는 귀를 찌르는 도로소음 탓에 수개월째 잠을 설치고 있다. 아파트단지 앞 강변북로를 달리는 자동차 마찰 소음이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불법으로 개조한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릴 때는 머릿속이 흔들릴 지경이다. 지난해 8월 이 곳으로 이사온 이씨는 “통행량이 느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 사이엔 소음이 5분 간격으로 거실을 비집고 들어와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 아파트단지 온라인 카페에는 소음으로 인해 밤잠을 설친다는 입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친다. 10분이 멀다 하고 귀를 때리는 소음의 공습에 주민들은 가장 편안해야 할 집안에서도 늘 긴장하고 지내야 한다. 남양주 경찰서에 여러 차례 신고하고 주민간담회까지 열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해당 도로에는 현재 방음벽이나 저소음포장, 방음터널 등 소음저감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다. 방음벽 설치 논의가 몇 차례 진행됐지만, 주민들은 “방음벽만으로 해결될 소음이 아니다”라며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도로소음은 '조용한 살인자'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장기간 피해가 누적되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에 치명적이다. 숙면을 방해하고 학습과 작업능률을 떨어뜨려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그 심각성에 비해 정부의 소음저감 대책은 미미하다. 한국일보가 서울시를 비롯한 12개 지방자치단체의 3차원 소음지도 구축사업 결과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민 10명 중 2명은 기준치를 초과한 소음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효진 기자

도로소음은 '조용한 살인자'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장기간 피해가 누적되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에 치명적이다. 숙면을 방해하고 학습과 작업능률을 떨어뜨려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그 심각성에 비해 정부의 소음저감 대책은 미미하다. 한국일보가 서울시를 비롯한 12개 지방자치단체의 3차원 소음지도 구축사업 결과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민 10명 중 2명은 기준치를 초과한 소음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효진 기자


임계치 넘은 도로소음에 일상 파괴

임계치를 넘은 일상적 도로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이씨뿐이 아니다. 원치 않아도 들을 수 밖에 없는 소음공해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참을 수 없는 피해를 계속 낳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토면적은 좁은데 고층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면 도로가 주거공간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는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자동차도로의 확보가 도시 형성에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부각됐고, 대형 간선도로가 들어서면서 하천 중심으로 형성됐던 커뮤니티가 도로 곁에 밀집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사통팔달 교통망은 이동편의를 제공했지만, 집안에서 누릴 수 있는 평온함은 앗아갔다. 소음민원의 경우 과거엔 비행기 활주로나 군사격장에서 발생하는 민원이 많았지만, 이제는 도로소음 피해가 대부분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도로소음 민원(593건)은 항공기 소음민원(449건)보다 30% 이상 많았다.

방음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 용산구 강변북로 인근 아파트 바로 옆으로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호 기자

방음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 용산구 강변북로 인근 아파트 바로 옆으로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호 기자

충남 천안시 서북구 소재 A아파트 주민도 10년 넘게 소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800여세대 주민들은 2006년 입주한 이후 아파트 앞 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평온한 일상을 보내기 어려워졌다.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5~10월에는 환기를 위해 소음을 견뎌야 했고, 새벽시간에는 화물차 등 대형차량이 지나가며 발생하는 소음으로 숙면을 이룰 수 없었다. 주민들은 천안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소음발생 원인에 대한 진단이 서로 달라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 인근에 고가차도가 건설될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주민들은 지난해 3월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천안시ㆍLH와 수차례 실무협의 및 현장조사를 거쳐 올해 안에 방음시설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A아파트 주민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끔찍한 소음과의 동거를 끝낸 사례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소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도 해결책 마련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시야가 넓어지듯, 아파트 고층부에서 겪는 소음피해는 경로가 다양해 선을 긋듯 명확하게 원인을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유지수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연구원은 “아파트 고층의 경우 방음시설을 설치해도 멀리서 오는 소음까지 완전히 막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소음피해 소송 경험이 있는 공대호 변호사는 "소음피해는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이 있어 고통이 상당한데도 피해자들은 현행 법률상 온전히 구제받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사법부가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음피해 소송 경험이 있는 공대호 변호사는 "소음피해는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이 있어 고통이 상당한데도 피해자들은 현행 법률상 온전히 구제받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사법부가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실생활에서 겪는 소음피해가 심각한데도, 피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 때문에 구제받기도 쉽지 않다. 소음피해를 입은 주민과 학생들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국민권익위 문을 두드리는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피해를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아직 참을 한도를 넘지 않았다” 또는 “피해는 인정하는데 예산이 없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천시 한 아파트에 거주하던 A씨는 2009년 7월 아파트 인근에 개통된 터널 탓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아파트에서 불과 33m 떨어진 곳에 터널이 설치되면서 주민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는 도로소음에 수면장애를 호소했다. 소음을 측정한 결과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인천시는 “예산이 없다”며 해결에 미온적이었다. 주민들은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까지 찾았지만, 위원회 역시 “참을 한도를 넘지 않는다”며 주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 마디로 시끄러워도 참고 살라는 것이다.

경기 안성시의 한 아파트 주민들도 20년간 고속도로 소음에 시달렸지만 한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1999년과 2003년에 각각 준공된 두 아파트 주민들은 국민권익위, 중앙환경분쟁조정위, 청와대 민원조정회의 등 수많은 협의를 거쳤으나 번번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어떤 방음시설을 설치할 것인지, 설치한다면 10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2007년부터 12년간 소송을 주고 받으며 합의에 이르지 못하던 안성시와 한국도로공사,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등은 지난해 10월 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 구간에 약 700m 길이의 방음시설을 설치하기로 가까스로 합의했다. 사업비는 한국도로공사가 60%, 안성시가 40%를 부담하기로 했다.

법원까지 갔지만... 도로소음 피해 구제 어려워

소음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한국도로공사 등에 방음벽 설치 등을 요구하지만, 해결이 안 되면 결국 법원까지 찾는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아파트 주민 500명은 남해고속도로를 왕복 8차선으로 확장한 뒤 소음피해가 심해졌다며 2011년 2월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ㆍ2심 법원은 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통상 소음도가 40㏈A을 넘으면 수면의 깊이가 낮아지기 시작하고, 50㏈A이 넘으면 호흡과 맥박수가 증가한다. 또 60㏈A을 넘으면 수면장애가 시작되고, 70㏈A을 넘으면 말초혈관이 수축되는 반응을 보이면서 정신집중이 떨어지고 휴식에 지장을 준다고 법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겪은 소음피해가 ‘참을 한도’인 65㏈A(낮 시간대 환경기준치)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며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음 저감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서울 용산구 강변북로 부근의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방음벽 모습. 이한호 기자

서울 용산구 강변북로 부근의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방음벽 모습. 이한호 기자


대법원은 그러나 소음피해를 예상할 수 있었다며 아파트 주민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을 낸 지 5년 10개월만에 주민들이 받아든 판결문에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한 주거의 과밀화로 도시 거주자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거주를 시작한다.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쾌적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생활이익은 원칙적으로 거주를 시작한 때 그 장소에서의 소음도를 기초로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입주자들은 아파트에 거주할 당시 고속도로로 인해 도로소음의 발생과 증가를 알았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역시 시끄러워도 참고 지내라는 결론이었다.

소음피해 소송 경험이 있는 공대호 변호사는 "소음피해는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이 있어 고통이 상당한데도 피해자들은 현행 법률상 온전히 구제받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사법부가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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