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반(反)인종ㆍ백인우월주의 여론이 '큰 바위 얼굴'로도 향하고 있다. 대형 조각상으로 새겨진 전직 대통령들이 미국의 역사적 순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이면에 원주민 학살과 강제 이주라는 흑역사가 엄존한다는 것이다.
1,750m 높이의 사우스다코다주(州) 러시모어산 정상 부근의 화강암 절벽에는 두상 크기만 18m인 전직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서부 개척을 이끈 토머스 제퍼슨, 노예 해방의 상징인 에이브러험 링컨, 국력 신장에 기여한 시어도어 루즈벨트 등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전당으로도 여겨지는 이 곳이 최근 인종차별 논란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AP통신은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하루 전인 내달 3일 러시모어산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대량 실업, 최근의 사회불안으로 휘청대는 상황에서 화려한 '컴백 무대'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문 당일 전투기를 동원한 곡예비행과 10년만의 불꽃놀이 등 대대적인 퍼포먼스를 벌일 예정이다.
원주민 단체들은 발끈하며 시위를 조직하고 나섰다. 이들 입장에선 백인우월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학살ㆍ강탈ㆍ인종차별 가해자인 전직 대통령들을 기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 워싱턴과 제퍼슨은 노예 소유주였고, 루즈벨트는 "(좋은 인디언) 10명 중 9명은 죽은 인디언"이라는 인종차별적 언행을 남겼다. 논란을 비켜간 건 링컨 정도다. 원주민단체 NDN 콜렉티브의 닉 틸센 회장은 "원주민의 땅을 훔치고 대량학살을 저지른 정복자들의 흰 얼굴을 되새기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적으로는 되레 보수진영이 논란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보수논객 벤 사피로는 최근 트위터에 "각성한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언제쯤 러시모어산도 날려버리자고 주장할까"라며 조롱했고, 공화당 소속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다주지사가 "내가 있는 한 안 된다"고 화답한 트윗은 8만회 이상 리트윗됐다.
AP는 "러시모어산 기념물은 자유ㆍ투지ㆍ혁신의 이상을 고취해온 공화국이 동시에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낸 미국 민주주의의 역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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