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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ㆍ정의" 앞세운 프로고발러들… 고발 때만 반짝 여론몰이

입력
2020.07.06 05: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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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발 도맡는 시민단체들의 정체는

편집자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 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시민단체 대표 이종배씨. 그는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등 총회원 1만여명에 이르는 세 시민단체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20대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한 이 대표는 2016년 불혹의 나이에 마지막 사시 1차 시험을 치른 뒤, 사시제도 존치를 부르짖는 운동가로 변신했다. 한강 다리에 두 차례 올라 사시제도를 살려 달라며 고공시위를 벌였던 이 대표는 법조인의 꿈을 접고, 이젠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법치를 바로 세우고 공정사회의 터를 닦겠다”는 게 그가 밝힌 인생의 목표다.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래발전연구원 직원을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국회의원실에 인턴으로 허위 등록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횡령, 사기 등 혐의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래발전연구원 직원을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국회의원실에 인턴으로 허위 등록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횡령, 사기 등 혐의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고발로?세상을?바꾼다는?고발전문가들

그는 이 꿈을 위해 ‘고발’을 수단으로 택했다. 지난해 6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연가투쟁을 방치하고 있다며 유은혜 교육부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것을 시작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직권남용),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명예훼손), 조희연 서울교육감(직무유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살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직권남용) 등 주로 정부ㆍ여당 인사를 고발장으로 저격해 왔다. 이 대표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권력자들이 법을 어기고 권력을 이용해 법을 깔아뭉개는 것은 나라의 기강과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심각한 문제”라면서 “고발을 통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법치주의도 살릴 수 있고 권력도 견제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고발러’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이 대표는 밤에 대리운전을 뛰며 생계를 유지한다. 십수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한 특기를 살려 고발장은 직접 쓴다. 그가 여권 인사들을 상대로 고발을 계속하자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아 근거 없는 ‘맹탕 고발’을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그는 “권력 견제 차원에서 집권여당 인사를 고발하는 것일 뿐 특정 정치세력의 후원이나 조종을 받은 일은 전혀 없다”고 항변한다.


“고발은?가장?싸고?효과적인?사회운동”

홍정식 활빈단 대표도 서초동에선 소문난 고발 전문가다. 그는 국익, 공익, 민익 등 삼익(三益)을 위해 시민운동을 벌이면서 고발도 마다하지 않는 ‘현대판 홍길동’을 자처한다. 1998년 활빈단을 창단한 뒤 성동격서, 삼한사온(3일은 강성시위, 4일은 평화시위)을 지침으로 삼아 적극적 시위 활동을 이어온 홍 대표는 “의외로 고발이 매우 효과적인 사회운동 수단”이라고 밝혔다. 홍 대표는 “수십 명 회원을 이끌고 대형 집회나 시위를 벌이려면 최소 행사용품이나 식사비에 100만원 이상이 든다”며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내는 일은 큰 돈이 들지 않는데다, 언론의 관심이나 반향을 일으키기도 쉽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 4월 부산시청 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홍정식 활빈단 대표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나타나 정의기억연대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펼쳐 경찰의 통제를 받고 있다. 뉴시스

홍정식 활빈단 대표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나타나 정의기억연대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펼쳐 경찰의 통제를 받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도 아닌 제3자로서 저명인사들을 고발하는 데 부담이나 책임감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홍 대표는 “피고발인이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으면 무고죄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확한 팩트를 잡아내 고발을 하는 게 상식에 가까운 고발이지, 단순히 고발을 위한 고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나름의 소신을 밝혔다.


쏟아지는?고발장에?난감한?검찰

통상의 시민단체가 집회나 시위, 입법 제안, 성명 및 논평 발표 등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외부에 알리는 것과 달리, 이들 고발 전문단체들은 정치ㆍ사회 현안을 곧바로 ‘형사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의혹 해소나 진상 규명을 넘어, 국가의 수사권과 형벌권을 가동시켜 달라고 검찰에 요구하는 셈이다.

물론 이 단체들이 특정인을 고발한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모든 사건에서 진지한 수사에 착수하거나, 피고발인을 재판에 넘기지는 않는다. 검찰은 △피고발인에게 혐의가 없는 게 명백하거나 △수사나 공소를 제기할 만큼 공공의 이익이 없는 경우 △불분명한 언론보도나 인터넷 게시물 또는 소문에 근거한 추측성 고발의 경우는 각하를 통해 불기소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많은 시민단체들이 고발처로 '수사 1번지'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을 선택한다.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검찰청에서 짤막한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많은 시민단체들이 고발처로 '수사 1번지'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을 선택한다.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검찰청에서 짤막한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연합뉴스


이 단체들 입장에선 나름대로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수사기관 입장에선 고발 남용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의 고발은 검찰청 민원실에 고발장을 접수할 때만 ‘반짝’ 여론의 관심을 받고, 실제 수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고발장을 내고도 고발인이 제대로 고발 근거를 대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서울의 한 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각하를 했다가 나중에 고발인이 항고나 재항고를 해서 수사 결론이 바뀔 경우 검사가 벌점을 받게 돼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부담감을 호소했다.

시민단체의 고발만 따로 집계하지는 않지만, 통상 고발 사건이 불기소 처분되는 비율은 40~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민단체들도 항간에 떠도는 의혹을 고발하는 게 아니라, 의혹을 추적한 뒤 구체적인 단서를 찾았을 때만 고발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고발 남용 문제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이 시민단체 고발을 구실 삼아 정략적으로 편파적인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직접 인지해 수사할 수 있는 사건임에도 시민단체 고발을 빌미로 수사에 들어갈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면서 “충분히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검찰로 넘겨지면서, 검찰이 정치화되는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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