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안정, 정규직 전환, 금융세제 개선 등 주요 정책마다 "국민의 계층 상승 희망마저 꺾는다"는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 프레임이 덧씌워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프레임이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사안마다 강하게 해명하고 있지만, 한번 흔들린 정부 정책 신뢰도는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도리어 부작용을 내는데도,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방향은 옳다"는 입장만 내세워 반감을 더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집값 3년 고공행진에도 "정책 잘 작동"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 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6ㆍ17 부동산 대책'으로 상당수 실수요자의 피해가 불가피할 거라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가령 규제 지역 지정 이전에 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를 앞둔 실수요자까지 받으려던 잔금 대출 일부를 못받게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부동산 인터넷 카페 등에는 "무주택 서민이 집 한 채 갖는 걸 막는 게 정부 정책 목표냐" 등의 비판글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시에 아파트를 사려고 했던 직장인 박모씨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이 무서워, 은행 대출을 감안해 자금 계획을 맞춰놨는데 갑자기 규제 지역이 되면서 자금을 구할 방법이 사라졌다"며 "이전에 대출을 받아 집은 산 사람과, 나처럼 대출을 못받아 집을 못산 사람 간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됐다. 정부가 사다리 걷어차기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6ㆍ17 대책의 초점이 투기 수요 억제에 맞춰져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들이 일부 부작용에 강하게 반발하는 건, 문재인 정부 3년간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600만원에서 9억2,000만원으로 52%나 급등했다.
하지만 정부는 좀처럼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출석해 "(부동산 정책이)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경실련이 주장한 통계는 시장 상황을 과잉 해석할 여지가 있다"며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14.2% 상승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무주택 서민 사이에서는 "14%는 적게 오른 거냐"는 비판과 함께 "정부 인식이 너무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주택 보유자인 청와대 참모들이 정부 권고에도 대다수 집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국민 불신을 키우는 요소다. 경실련 관계자는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한 공직자에 의해 결정되는 정책은 집 없는 서민과 청년 등을 위한 정책일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눈높이 소통 거부하고 "정책 방향 옳다" 고집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취업준비생(취준생) 사이에서는 "사다리 걷어차기정책"으로 불린다.
공기업 취직에 사력을 다하는 취준생들은 비정규직 근무자가 별다른 경쟁없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자신들의 잠재적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점도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과 그에 따른 취준생들의 누적된 불만이 최근 인천국제공항 사태를 계기로 분출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선한 의지`만을 강조하며 20~30대 젋은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공기업 취준생 이모씨는 "비정규직의 직업 안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데, 정부가 공정의 가치를 외면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권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구호의 정당성을 앞세워 잘못과 오류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모두 `사다리 걷어차기` 프레임이 씌워지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2023년부터 2,000만원 이상의 차익을 낸 개인에게도 주식거래 양도세를 부과하기로 한 금융세제 개편안은 전체의 95% 투자자는 세금 부담이 지금보다 낮아지는 방향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만성 저금리 시대에 주식 거래로 부를 형성해 보려는 개미들의 꿈을 정부가 걷어차 버렸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40대 직장인 서모씨는 "대출 규제로 서울에서 집도 못사게 하더니, 이제 주식 투자로 돈을 벌겠다는 개인 투자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가려 한다"며 "최근 정부 정책 초점이 계층 상승의 꿈을 막는데 맞춰져 있다는 인식까지 직장인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다수 개인 투자자에게 이득이 되는 세제 개편안인데도, 오히려 증세 프레임으로 비판이 쏟아지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일방 드라이브 땐 반발 더 커질 수도"
전문가들은 총선 압승에 도취된 여당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경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SNS 글에서 "지지도가 높으면 정책 실수에 관대하게 되고 참모들도 해이해져 다 잘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정책적으로 성공해 역사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일방적인 정책 밀어 붙이기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어느 정부든 정책 성공을 위해선 야당과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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