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차별 운동부터 반(反)트럼프 운동까지 참여
"온라인 친화적…사회적 이슈에 큰 관심"
외신도 이들의 위력에 놀랐다. 이들을 더 이상 '빠순이'로 비하하지않는다. 중앙집권화된 공식적 리더는 없지만 단결력이 강하다. 온라인 플랫폼을 다루는 데 능숙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전 세계 K팝 팬들 이야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물론, 프랑스 일간 르몽드까지 K팝 팬들의 정치적 움직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유세 노쇼에 'BLM' 운동까지 적극 참여
이들의 위력을 가장 크게 실감케 한 사건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오클라호마주(州) 털사 유세장 '노쇼'다.
석달여 만에 유세를 재개한 트럼프 대통령은 텅 빈 객석을 마주해야만 했다. 당시 1만9,000석 규모의 행사장의 3분의 1 가량이 텅 비었다. K팝 팬들이 온라인으로 유세장 티켓을 선점한 뒤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조직적 보이콧' 운동을 벌인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미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튿날 트위터에 "K팝 팬들, 우리는 정의에 맞서 싸우기 위한 당신들의 헌신을 봤다"며 "매우 고맙다"고 밝히기도 했다.
K팝 팬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미국 전역을 휩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규탄 시위 당시에도 '백인 목숨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 해시태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등장하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무더기로 올리기도 했다. 미국 댈러스 경찰이 인종차별 항의 시위 현장에서 불법 행위를 목격한다면 제보 영상을 보내 달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을 때도 K팝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끊임없이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숙영 미 UCLA대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는 미국 NBC방송에 "이들은 단순히 반(反)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서 참여한 게 아니다"라며 "팬 문화가 온라인상에서만 수동적으로 K팝을 소비하던 것에서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데까지 진화한 것"이라고 전했다.
"다양한 배경 가진 소수자들, 지배층으로부터 해방 원해"
그렇다면 이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을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고 진단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인기를 연구한 작가 타마르 헤르만은 영국 가디언에 "이들은 공식적인 리더없이 개별적으로 움직인다"며 "그저 여러 가치를 현실화할 줄 아는, K팝을 좋아하는 팬들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들 집단은 매우 다양화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미 인디애나대 동아시아 문화학 조교수인 시더보우 새이지도 "이들은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새이지 교수는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소수집단에서 왔다는 점"이라며 "K팝은 이들에게 지배문화를 대체하는 또 다른 대체재가 된다"고 평가했다. '해방'을 원하는 이들에게 K팝은 탈출구가 돼준다는 해석이다.
NYT와 르몽드에 따르면 '트럼프 노쇼'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은 2030 미국인들로, 트럼프 대통령의 가치에 반대한다. 세계적인 이슈에 열려 있고 다른 문화와 언어를 배우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1억명에 달하는 전 세계 K팝 팬들 중 대부분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왔다. 나머지 1,500만명은 유럽에서, 1,200만명은 아메리카 대륙 출신이다.
"SNS에 능숙한 2030, 사회적 이슈에도 열려 있어"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온라인 친화적이라는 점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미셸 조는 "이들 대부분은 이른바 'Z세대(1997~2012년생)'"라며 "K팝 팬들의 강점 중 하나는 온라인에 친숙하다는 것"이라 평가했다. 이어 "이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인터넷에서 나타내는 데 매우 능숙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SNS는 단연 트위터다.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해 트위터에서 K팝 관련 게시물로 61억개가 올라왔다. 하루에 약 170만건의 게시글이 트위터에 올라왔다는 뜻이다. 매분 1만1,000개가 게재됐다는 얘기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BTS가 전 세계적으로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유명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 리한나, 카디비, 저스틴 비버, 비욘세를 제친 것이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행하는 기술 전문 잡지인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K팝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그룹이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달성하게 만드는 '전략'을 배운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K팝 팬들은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나오면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고, 널리 공유한다. 때로는 특정 작업을 반복 수행하는 프로그램인 보트(Bot)를 이용해 조회수를 늘려가기도 한다.
또한 K팝 팬들은 사회적 운동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이지 교수는 "이들은 정파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라고 바라봤다. 단순히 정파적으로 반(反)트럼프 성향을 띄고 있어서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인종차별적인 가치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이 같은 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다.
그는 또 "좋아하는 그룹의 이름을 걸고 제3세계에 집을 건설하거나 숲을 다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이제는 스타들도 팬들을 향해 선물을 달라고 하기보다는 사회적 이슈에 투자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다만 K팝 팬들의 행보에 대한 반발 움직임도 존재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회운동 전문가인 가브리엘라 콜만은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극우 운동가들이 분명히 이에 대응할 것"이라며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K팝 팬들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