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치매 간병 기록
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한국일보>
팔순의 나이에도 손자의 기사 오타까지 지적하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께서 먼저 가시자 급격하게 약해지셨다. 치매가 시작되고 나서도 시골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셨지만, 새벽에 논두렁에서 동네 주민에게 발견되고 나서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노인 요양 병원으로 모셨다.
마침 그때 평생직장을 정년퇴직한 아버지께서 노인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따셨다. 무슨 궁리인지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격증을 따자마자 할아버지를 모신 노인 요양 병원에 입사 원서를 내셨다. 어차피 매일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할아버지를 지켜보시는 상황이니 아예 직원이 되어서 옆에서 지켜보자고 마음먹으신 것이다.
노인 요양 보호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기에 처음에는 말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문병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희미하고 엉클어져 가는 기억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남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는 아주 큰 안정을 취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어르신을 돌보는 아버지의 표정도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아서 클라인먼의 ‘케어’(시공사 펴냄)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아버지의 모습이 겹쳤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 대학 정신의학과 교수가 50대 후반에 조발성 치매(젊은 치매)가 온 아내를 10년간 보살핀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아내 조앤을 보살피는 과정을 통해서 현대 의료에서 ‘돌봄(care)’이 가진 의미를 성찰한다.
‘케어’는 중국 현지에서 남편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천자문’을 영어로 번역하던 명민한 중국학자 조앤이 치매로 무너지는 모습부터 시작한다. 학자로서 경력을 쌓아오면서 아내의 조력이 필수였던 저자는 이런 아내를 보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책임지고 끝까지 함께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고 나서부터 10년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여정이 시작된다.
시력을 먼저 빼앗기고 나서 서서히 기억이 사라져가는 조앤은 나중에는 남편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심각한 상태로 치닫는다. 품위의 여신이었던 조앤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상황도 저자로서는 못 견디게 슬픈 상황이다.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앤이 거친 언행을 거침없이 하는 모습은 어떤가.
저자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일은 이 모든 과정에서 보이는 현대 의학의 차가운 선 긋기다. 의사는 조앤의 진단에만 치중할 뿐 환자가 어떻게 돌봄을 받고, 그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는 어떤 처지에 있는지 관심이 없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의사로 일하던 저자는 이렇게 돌봄의 가치를 부정하는 현대 의학이 과연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아내를 돌본 10년을 담담하게 복기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묻는다. 사실 그는 잘못했다. 치매 아내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저자의 간병기는 감동적이지만, 그의 고집스러운 ‘독박 간병’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픈 아내까지 위험에 빠뜨린 행동이었다. 저자는 병원이나 시설에 아내를 맡기지 못했던 선택을 뒤늦게 후회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돌봄의 가치를 강조하는 저자 아서 클라인먼은 사실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이라는 현대 의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제안한 ‘사회 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개인의 고통이 사실은 정치, 경제, 사회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통찰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10년 동안 이런 사회적 고통을 당사자로 직접 경험해야 했다. 그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다.
결국, 저자의 보살핌을 받던 조앤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던 할아버지도 같은 길을 갔다. 할아버지는 말년에 요구르트를 즐겼다. 그는 아들이 준 요구르트를 마지막으로 맛있게 먹고서, 30분 후에 눈을 감았다. ‘돌봄의 영혼’이 지켰던 조앤과 할아버지 모두 가는 길이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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