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섬 소녀들 납치돼 강제결혼 할까 공포에 떨어
"악습은 전통 아니다" 장관 격노... 경찰 수사 착수
사내 여러 명이 한 여성을 실어서 강제로 차에 태웠다. 다른 여성들이 다가와 열린 차창을 통해 차 안에 있는 여성을 꺼내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차 안에 있는 여성은 울먹이고 바깥에 있는 여성들은 절규했다. 모여든 수십 명은 휴대폰으로 이 장면을 찍을 뿐이다. 이어 화면이 바뀌고 강제로 차에 태워졌던 그 여성이 다시 남자들에게 들려 집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지난달 말 백주대낮에 벌어진, 납치로 봐도 무방한 이 장면은 사실 인도네시아 한 섬의 결혼 풍습이다. 최근 이 동영상이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면서 공분을 샀다. '카윈 탕캅(kawin tangkapㆍ납치 결혼)'이라 부르는 전통 결혼 풍습이 악습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관계부처 장관은 격노했고,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카윈 탕캅은 동(東)누사텡가라주(州) 숨바섬(인구 약 76만명)의 오랜 결혼 문화다. 원래는 남성이 ‘납치'될 여성 가족에게 보석과 옷 등 결혼 지참금을 내야 한다. 이어 여성은 전통의상을 갖춰 입고 납치되길 기다린다. 남성은 여성을 납치한 후 여성의 가족에게 결혼 소식을 알린다. 그러나 최근엔 합의 절차는 모두 생략된 채 납치 관행만 남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들이 언제 납치될지 몰라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이 구스티 아유 빈탕 다르마와티 여성아동보호부 장관은 3일 관련 동영상에 대해 "납치 결혼 관행은 여성폭력이자 아동폭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나의 고향인 발리에도 비슷한 관행이 있었으나 현재 규범과 맞지 않아 사라졌다"면서 "전통문화라는 탈을 쓰고 여성과 어린이를 괴롭히는 악습은 뿌리뽑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역 국회의원도 "납치 결혼은 직접 피해 대상인 어린 소녀와 여성들뿐 아니라 결혼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쳐 다음 세대까지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악습은 숨바문화의 일부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관련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는 적어도 4곳에서 16~26세의 피해자들이 더 있다고 보고 있다. 납치 결혼은 납치 및 강제 감금에 관한 형법에 따라 5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300여 민족이 6,00여개 섬에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결혼 풍습도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예컨대 술라웨시섬에선 남성이 여성에게 지참금을 내야 하지만 수마트라섬 서부수마트라주 파당에선 여성이 남성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줘야 결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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