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4개월 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체육단체는 물론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 선수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최소 4개월은 있었다는 뜻이다.
3일 한국일보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최 선수는 지난 2월 경주시청 등에 진상 조사를 요구한 이후 부산의 한 숙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인 지난달 25일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 선수와 그의 부친 최영희씨는 지난 2월 초부터 경북 경주시청에 소속팀의 지도자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경주시 등에 따르면 최영희씨는 지난 2월 6일 경주시청을 직접 찾아 딸이 당한 모든 이야기를 했으며, 진상조사와 함께 경주시 차원에서 가혹행위 가담자를 징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최씨는 보름이 지나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시청에 전화했지만, 담당자로부터 “수 천만 원을 들여 해외 훈련을 보냈는데 당장 귀국시킬 수 있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비슷한 시기 철인3종협회도 이 사건을 인지했으며, 인권위도 최 선수 측의 진정을 접수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미래통합당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진상 규명 및 체육인 인권보호 태스크포스(TF)는 3일 국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재근 철인3종협회 사무처장 등을 국회로 불러 최 선수 사망 경위를 조사한 결과, 철인3종협회는 2월 이 사건을 알았다”고 밝혔다.
TF 관계자는 “협회 관계자가 감독에게 전화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며 “협회는 감독에게 ‘아무 일 없다’ ‘그런 사실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듣고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TF에 따르면 철인3종협회 측은 ‘4월에 사건을 알았다’는 주장을 펼치다가 TF 위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2월에 사건을 인지했다’고 털어놨다. TF 위원이자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인 이용 의원은 “2월에 사건에 대해 정확한 조사를 해서 조치를 취했다면 이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선수 측은 같은 달 인권위에도 진정을 접수했다. 최 선수 측이 3월 수사당국에 이번 사건을 고소하는 과정에서 인권위 진정을 취하했다지만, 인권위 대응도 한 발 늦은 게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는 “(최 선수 측이)진정서를 낸 건 맞지만 당시 조사 내용 등을 말해 줄 순 없다”고 했다.
3월 사건을 접수해 수사를 맡은 경주경찰서는 최 선수가 감독과 팀 닥터, 선수 2명을 고소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지난 5월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최근 아동범죄조사부(부장 양선순)에 배당해 경찰 수사자료 등을 검토하고 있다. 최 선수 측은 수사기관의 관계자 조사가 지지부진한 탓인지 4월 들어선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도 진정을 접수했지만, 이곳에서조차 즉각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최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폭력 신고를 접수한 날짜가 4월 8일이었는데도 조치가 되지 않아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은 정말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일 상임위 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강력한 후속조치 마련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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