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家族):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
간단하고도 명료한 정의건만, 생각보다는 손쉽게 충족시키기 어려운 기준이다. 아플 때 서로를 돌보고, 공동명의 집의 대출금을 함께 갚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사이일지라도 이 ‘가족’의 정의에 포함되지 못하면, 각종 혜택과 보호에서 배제되는 ‘동거인’으로 남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가족’ 범주 바깥에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한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쓴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은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가족의 다양성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것을 반영한다.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족 꾸리기를 실험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여자 둘이 보통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019년 11월 10일 롯데호텔에서 결혼식 하나가 열렸다. 청첩장도, 축사도, 부케 던지기도, 여느 결혼식과 모두 같다. 단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혼인 서약을 주고 받은 두 명이 모두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김규진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위즈덤하우스)는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레즈비언 결혼식’을 올린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물론 결혼식을 치렀다 해도, 이 부부는 정식 부부가 아니다. 공식적인 혼인신고도, 신혼부부 대출도, 수술 시 보호자 동의도, 사망 시 상속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거절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그 지난한 거절의 과정을 알뜰하게 기록했다. “굳게 닫힌 병을 한 명씩 돌리다 보면, 내가 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병은 열리게 되어 있을 것"을 믿으면서.
◆한국에서 엄마가 되어도 괜찮을까?
결혼과 출산이 동의어로 여겨지는 때는 지났다. 그럼에도 신체 건강한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여전히 무책임함, 이기적임, 철없음 같은 지레짐작의 단어들이 자동태그처럼 들러붙는다. 특히 여성은 출산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의사보다는 ‘엄마’라는 모성신화에 더 좌지우지된다.
최지은의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한겨레출판)는 결혼은 했으되 아이는 낳지 않기로 결심한 ‘기혼 무자녀’ 여성으로서, 자신과 똑같은 결심을 한 17명의 여성을 만나 인터뷰한 기록이다. ‘엄마는 되지 않기’를 결심한 구체적 계기나 개개인별 사정은 저마다 모두 다르다. 하지만 독박 육아, 돌봄 노동, 여성과 아이 등 약자에 대한 혐오, 경력 단절 같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엄마 되지 않기’를 그저 이기적 결심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책은 보여준다.
◆‘내 집’ 말고 ‘우리 집’에 삽니다.
결혼과 출산 등에 대한 가장 큰 장애는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이다. 가족에 대한 상상은 곧 ‘함께 살 집’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우엉, 부추, 돌김의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900km)는 이 부분을 건드린다. 2인 가구였던 부부 부추와 돌김, 1인 가구였던 우엉, 세 사람은 공동 명의로 땅을 사 직접 집을 짓는다.
매끼니를 함께 하는 ‘식구’이자 빚을 함께 갚는 ‘대출 공동체’지만, 이들이 국가가 공인하는 ‘서류상 가족’이 되는 방법은 없다. 부부인 돌김과 부추가 친구인 우엉을 입양해야 하는데, 그럴 순 없으니 동거인으로 들였다. '집까지 지어다 같이 사는데 왜 가족이 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하게 한다.
◆결혼은 싫지만, 혼자는 두렵다면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인 가구는 603만 9,000가구로 전체 가구 중 29.9%를 차지했다.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구 수(29.6%)를 앞질렀다. 1인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추세 덕이다. 앞으론 ‘나홀로 가족’이 되레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 될지 모른다.
‘비혼 1세대의 탄생’(행성B)을 낸 홍재희는 1인 가구의 개척자일지 모른다. 홍재희는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이제는 50대를 눈앞에 둔 인물. 자신의 여정과 그간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 가족 개념의 변화를 보여준다. ‘자발적 비혼’부터 ‘어쩌다 비혼’까지, 비혼의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홍재희는 그저 "각자 살되 어려울 땐 서로 돕는” 삶을 꾸릴 수 있으면 족하다고 본다. 결혼했느냐, 안했느냐 이분법적 사고의 틀 자체를 버리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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