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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집 팔면서도 욕먹는 청 참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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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집 팔면서도 욕먹는 청 참모들

입력
2020.07.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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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왼쪽)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영민(왼쪽)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다시 한번 참모들에게 다주택 해소를 권고했다. 벌써 두번째니 이번엔 뭐라도 파는 시늉을 해야 할 처지다. 당장 서울 반포와 충북 청주에 아파트 두 채를 가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청주시 아파트를 급매물로 내놓았다.

일반인이라면 반포 아파트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청주보다 강남이 거주 여건이 좋고, 앞으로 오를 가능성도 높아 보이니까.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직위나 정치적 미래가 어른거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포를 택할 것이다.

다른 참모들은 어떤 집을 내놓을까. 강남과 송파에 집을 가진 김조원 민정수석은? 분당에 두 채를 가진 이호승 경제수석은? 잠원동 아파트가 두 채인 강민석 대변인은? 청주와 반포 사이보다 훨씬 고민이 깊겠지만, 개중 덜 좋아 보이는 집부터 처분할 걸로 보인다. 그게 합리적이니까.


이들의 선택에 굳이 비아냥을 더할 마음은 없다. 같은 값이면 좋은 지역, 좋은 집에, 앞으로 가격도 오를 만한 곳에 누구나 살고 싶다. 집이 없는 사람도, 여러 채를 가진 사람도 그렇다. 고위직에 가장이라 해도 가족의 의사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그간 팔지 못한 데에도, 이제 어느 집을 던지냐에도 저마다 말 못할 사연이 있을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재산권은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럼에도 화가 나는 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집권세력의 언행이다. 문재인 정부는 누차 “부동산만은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은 “집값을 임기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겠다”는 다짐을 했고, 청와대는 “솔선수범해 다주택을 처분하겠다”고도 했다. 정부 각료들은 틈 날 때마다 “부동산 정책의 원칙은 실수요자 보호와 투기 억제”라고 되뇌었다. 그런데 어느 하나 이뤄진 게 없다. 여기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금까지 부동산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고 불을 질렀다.

사실 이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여건은 매우 불리하다. 장기간 초저금리가 누적되면서 세계적으로 부동산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많이 올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보다 돈이 많이 풀린 상태에서 맞은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집값이 오름세를 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유동성 요인만으로도 이런데, 여기에 한국에선 부동산 불패신화와 내 집 소유 욕구까지 작용한다. 솔직히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요즘 집값을 끌어내리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차라리 애초부터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요술처럼 당장 집값을 잡긴 어렵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안정시키겠다. 그를 위해 이런 준비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면 배신감까지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송구하다”(3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허탈한 고백이라도, 집권 3년이 훨씬 넘어 국민이 처음 들어서는 안 된다. 집값이 왜 자꾸 오르냐는 질문에 매번 “잘 하고 있는데 왜 시비냐”는 식으로 답하니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내로남불’이란 말이 유행을 탔다. 국민의 분노 지점은 외면한 채 여전히 “법을 어긴 적 없다”고만 강조하는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부동산이 더해질 참이다. “우리는 웬만하면 두 채 이상을 유지하고 싶고, 가급적 강남 집을 지키고 싶지만 국민들은 그러지 마시라”는 꼴이 됐다. 이런 상황에 무슨 좋은 말을 듣겠는가. 강남 집을 지키면 ‘강남불패를 자인했다’ 할 테고, 지방 집을 지키면 ‘많이 오른 집 팔고 먹튀한다’고 할 테니. 청와대는 지금 팔아도 욕 먹고, 안 팔아도 비난 받을 자충수에 빠졌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대통령의 다짐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에선 어느 하나 실현된 게 없다. 부동산 안정을 이룰 실력에 앞서 정제된 말과 행동의 일치가 필요하다. 현실이 내로남불인데,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르겠는가.

김용식 경제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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