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호이 (7.9)
1993년 7월 9일, 캐나다 토론토 도심 ‘도미니언 센터’ 빌딩 24층 창문에서 당시 캐나다 최대 로펌 중 하나였던 ‘해롤드 데이 윌슨(Harold Day Wilson)’의 기업 담당 시니어 변호사 게리 호이(Garry Hoy, 1955~1993)가 떨어져 숨졌다. 그가 자진해서 창문으로 뛰어든 건 맞지만 자살 '사건'이 아니라 사고였다.
현대 건축 기술에 대한 무모한 믿음이 비극을 초래했다. 로스쿨 진학 전에 건축공학을 전공했던 호이는 평소 자신의 공학 지식을 즐겨 과시하곤 했다. 로펌이 세를 든 56층 철골 빌딩의 내구성과 청동빛 강화유리 외벽의 견고성을 철벽처럼 여겼던 그는 직원들 앞에서 유리 벽에 달려드는 시연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는 유리와 함께 늘 무사했다.
사고 당일은 로스쿨을 갓 졸업한 인턴 변호사들의 환영 리셉션이 열리던 날이었다. 사고는 리셉션장인 24층 이사회실 인근의 한 작은 회의실에서 일어났다. 그는 신입 변호사들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또 한번 과시했고, 첫 관객들이라 그랬는지 의욕이 넘쳤던 모양이었다. 첫 번째 시도의 성공에 성이 차지 않았던지 그는 또 한번 창문을 향해 돌진했다. 죽자고 달려드는 72.6kg 성인 남성의 의욕, 즉 운동에너지는 강화유리와 창틀의 인장 강도를 넘어섰다.
물론 강화유리는 그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지만, 유리를 붙들고 있던 창틀의 힘이 그를 외면했다. 사고 직후 한 건축공학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달려드는 160파운드 남자의 충격을 지탱할 수 있는 유리 외벽을 시공하라는 건축 규정은 나는 세상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허술한 공학지식이 고전역학(운동에너지= 속력의 제곱 x 질량x 1/2)과 상식의 세계를 넘어서서 빚어진 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뉴스와 TV쇼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공학이 인간의 비이성적 도발까지 고려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로펌은 고객의 외면과 변호사들의 잇단 이탈 끝에 3년 뒤 문을 닫았다. 그해 호이는 ‘다윈 상(Darwin Award)’을 탔다. ‘어이없이 죽거나 생식능력을 상실함으로써 나쁜 유전자를 스스로 제거해 인류 진화에 기여’한 이에게 주는, 1993년 미국의 한 기자가 제정한 상이다. 사는 게 영 탐탁지 않다면 그 상의 역대 수상자 사연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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