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원 요구 등 강요죄, 무죄로 뒤집혀
판결 확정 시 공천개입 사건 포함 '징역 22년'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키고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상납받은 박근혜(68)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형이 선고됐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두 사건을 함께 묶어 심리한 파기환송심의 판단이다. 병합 이전 각각의 항소심 결과 합계인 징역 30년(국정농단 사건 징역 25년, 특활비 사건 징역 5년)보다 무려 10년이나 형량이 줄어들었다.
이 같은 감형은 대기업에 금전 지원을 압박한 사건 등에 적용됐던 강요죄가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말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지 벌써 3년 3개월여가 흘렀지만, 검찰이 이를 문제 삼아 상고할 경우 또다시 대법원 판단을 받아야 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이 언제 마무리될지도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오석준)는 10일 박 전 대통령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재임 중 뇌물 범행에 대해 징역 15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국고 손실 등 다른 혐의에 대해선 징역 5년 선고와 함께, 추징금 35억원을 명령했다.
재판부가 이처럼 혐의를 나눠서 선고한 건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른 것이다. 작년 8월 대법원은 “대통령 임기 중 저지른 뇌물 범죄는 별도 선고하라”면서 국정농단 사건 2심 판결을 깼다. 공직선거법상 뇌물죄 유죄 판결을 받으면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탓에, 다른 범죄와 분리해 양형을 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특활비 사건 2심도 파기했는데,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2016년 9월 이병호 전 국정원장한테 받은 특별사업비 2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특활비 사건 1ㆍ2심은 이를 무죄로 봤던 터라, 당초에는 ‘파기환송심에선 형량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도 감형 폭이 매우 컸던 건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종전 국정농단 2심 재판부와는 달리, 박 전 대통령의 강요죄 대부분을 무죄로 봤기 때문이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ㆍ64)씨와 공모해 대기업에 금전 지원을 부당하게 요구한 데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죄와 강요죄를 적용했다. △대기업으로부터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자금을 강제 모금 △현대차그룹 등 대기업에 재단 자금 지원 요구 또는 특정 계약 체결 압박 △삼성그룹에 영재센터 후원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국정농단 사건 1·2심은 이를 유죄 또는 일부 유죄로 인정했고, 대법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에선 재판부의 직권 판단에 의해 무죄로 뒤집혔다. 대법원이 최서원씨 사건을 심리하며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협박, 즉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하는데 최씨의 출연금 요구가 기업들이 겁을 먹을 만한 ‘해악의 고지’까지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던 게 이번 재판에도 적용된 것이다.
아울러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가 적용됐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5개 사건에서도 강요죄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5개 사건 중에서도 △노태강 전 2차관 등 문체부 공무원에 사직 요구 △영화ㆍ도서 관련 지원 배제는 항소심이 유죄 판단했으나 이번에 무죄로 바뀌었다.
이날 재판부는 “국정농단 사건 이후 국민 전체의 분열과 갈등ㆍ대립이 격화됐고, 그 후유증과 상처가 지금도 회복되지 않아 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취한 이득이 없고, 정치적으로는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또, 벌금을 내지 않으면 노역을 살아야 하는 점, 형 집행 종료 시점에서의 피고인 연령도 고려했다”고 감형 사유를 설명했다.
파기환송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박 전 대통령의 총 형량은 징역 22년이 된다. 앞서 그는 두 사건과 별개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공천과정에 불법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도 기소돼 징역 2년이 이미 확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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