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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 닮은 조문 논란

입력
2020.07.13 18:00
수정
2020.07.13 18:05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주말 서울 도심 광장에서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의 추모 행렬이 각각 이어졌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12일 시민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조문을 하고 있다(위 사진). 비슷한 시간 직선거리로 700여m 떨어진 광화문 광장에서는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가 보수 단체에 의해 설치돼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주말 서울 도심 광장에서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의 추모 행렬이 각각 이어졌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12일 시민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조문을 하고 있다(위 사진). 비슷한 시간 직선거리로 700여m 떨어진 광화문 광장에서는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가 보수 단체에 의해 설치돼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 문을 연 상가 두 곳의 조문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경우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조문을 가는 게 맞느냐에서부터 5일장인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게 맞는지를 두고 여론이 나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으며 상주를 자임한 반면, 미래통합당은 장례 형식을 문제 삼아 조문하지 않았다. 정의당은 청년 세대인 류호정ㆍ장혜영 의원이 피해자와 연대를 호소하며 조문을 거부해 홍역을 앓았다.

□향년 100세로 별세한 6ㆍ25 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경우 동작동 서울현충원이냐, 대전현충원이냐를 놓고 보수ㆍ진보의 입장이 갈렸다. 독립군 토벌을 위해 설립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경력이 뜨거운 감자였다. 심지어 진보 내에서는 대전현충원도 분에 넘친다며 친일파 파묘법 입장까지 개진되는 등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두 논란을 보면서 조선 18대 임금 현종 재위 시절 할머니뻘인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가 상복을 착용할 기간을 놓고 싸운 예송논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아버지인 효종이 승하하고 현종이 등극한 1659년 자의대비가 상복을 3년 입어야 한다는 주장(남인)과 1년 입어야 한다는 주장(서인)이 맞선 끝에 서인이 이긴 게 1차 예송논쟁이다. 15년 후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죽었을 때 또다시 자의대비의 상복 착용 기간을 놓고 1년 주장(남인)과 9개월 주장(서인)이 맞선 끝에 남인이 승리한 게 2차 예송논쟁이다. 마침 2차 예송논쟁이 있던 해 현종은 죽었다. 장례 문제로 극한 싸움만 벌이다 재위 기간을 흘려보낸 셈이다.

□동질성과 중앙 집중화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는 모든 분야가 중앙 권력을 향해 치닫는 ‘소용돌이’와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이런 중앙 집중적 환경에서는 다원주의가 자리잡기 어렵고 당파주의가 득세한다. 36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적대적 갈등이 반복되는 원인은 극단적 엄정함을 앞세워 조그만 차이도 인정하지 못하는 이런 당파적 태도다. 서로 다른 가치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 효과를 갖도록 하는 게 민주주의 작동 원리라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럴 건가.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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