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자, 한 평짜리 마당은 전쟁터가 되었다. 꽃나무와 잡초들이 서로 더 넓게 살겠다고 공간을 차지하기 바쁘다. 터줏대감 장미넝쿨은 지정석을 차지하고서 아치형 입구를 가득 덮었다. 이 집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고참인데 5월에 장미가 필 때면 이 집은 골목에서 가장 예쁜 집이 된다. 나를 장미넝쿨집 아저씨라고 불러주길 바랄 정도다.
마당의 2할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은 딸기다. 작년에 손바닥만 한 모종을 5개 정도 심었는데, 겨울의 한파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마당의 앞쪽을 차지했다. 햇빛이 잘 드는 ‘로열층’을 집터로 잡은 것이다. 게다가 딸기까지 무수하게 열리니 넘버2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뻗어나가는 기세가 놀랍다. 내년쯤에는 마당의 나머지까지 독차지할까봐 걱정되기도 한다.
담벼락 근처의 공간은 그야말로 혼돈이다. 이름 모를 풀들이 서로 엉켜서 자라고 있다. 강아지풀 말고는 잘 모르는 잡초들이다. 검색 사이트의 서비스를 이용해도 계속 다른 이름이 나오니 이름 모를 잡초들이라고 할 수밖에. 이 영역은 딱히 강자가 없는데, 넝쿨류의 한 녀석이 '내가 다 차지할 거야'라고 결심을 한 듯 모든 풀들을 휘감으며 이곳저곳을 누빈다.
이 녀석은 해마다 이맘때 등장한다. 잎사귀와 줄기가 여리여리하고 뿌리도 깊지 않아 솎아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엄청난 괴력으로 마당을 점령해 나간다. 비가 자주 오고 햇볕이 좋은 요즘엔 며칠 사이 마당을 가로지르며 영역을 넓힌다. 딸기 잎사귀 사이사이를 촘촘하게 엮으며 몸을 숨긴 다음, 장미넝쿨을 타고 훌쩍 높이 올라간다. 아, 독하기가 코로나19 같구나...
복잡한 전투가 치러지는 마당에서 조금 떨어진 담벼락 아래에는 여유롭게 자라나는 녀석이 있다. 작년에 야생방아라며 좋아하던 지인에 의해 방아꽃으로 판명된 이 녀석은 집주인과 마당 전사들의 무관심 덕에 그 자리에 다시 자라나 꽃까지 피웠다. 시멘트 마당의 작은 틈새에서 솟아나 담장 높이까지 성장해 버렸다. 역시 살아가는 데는 자리를 잘 잡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녀석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운지라 감히 잘라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 어디까지 자라는지 지켜볼게.
사무실 안에서는 조용히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무실은 백년된 목조주택이다. 당시의 건축기법상 마룻바닥 아래에 환기를 위한 통풍구까지 있는데, 아마도 그 아래에는 다종다양한 벌레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어젯밤에 사건이 발생했다. 창고방의 문틀 주변에서 개미를 발견한 것이다. 개미군단 주변엔 소복하게 쌓인 하얀 나무 부스러기들이 있다. 설마 이들이 목조가옥을 무너뜨리기까지 한다는 그 무시무시한 흰개미들인가? 목재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 성분을 섭취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목조문화재의 저승사자'라 불린다.
얼른 이들의 뒷조사를 해보니, 3~6월에 짝짓기를 하려고 목재 밖으로 나온단다. 지금이 그 시기인가 보다. 목조주택을 시공할 때는 흰개미가 번식하지 못하도록 약품 처리한 방부목을 쓰기도 하고 버그 스크린 등 디테일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그 흰개미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으니 이를 행운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할지. 동식물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인간과 공존한다. 집을 둘러싸고 고요하지만 치열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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