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새로 쓰는 K방역…바꿔야 산다
K방역으로 버틴 지난 6개월 일단 성공
이 상태로는 전력질주 못버텨
전문가들 "K방역 잊어야 K방역이 산다"
1,380만5,296명.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이 집계한 이달 17일 기준 세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규모다. 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첫 환자가 나타난 이후 이렇게 상황이 악화하기까지 반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신종 코로나의 칼날은 강대국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13만명이 사망하고 355만명이 감염된 미국에선 매일 신규 확진자가 7만명 이상 늘어가고 있다. 개발 수준이 뒤처지는 국가들의 상황은 더 종잡을 수 없다. 브라질에서는 201만명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매일 4만명 이상이 신규 환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계 최다 인구국 중 하나인 인도의 확진자도 100만명을 돌파했다.
신종 코로나 발병 6개월의 성적표. 다행스럽게 한국의 점수는 이들 국가와 달리 '방역 성공'의 평점에 근접해있다. 비록 지난 1월 20일 첫번째 확진자가 등장한 이래 일일 신규 확진자가 900명에 이르는 때도 있었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지역사회 감염 환자는 하루 2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망자 발생 속도는 급브레이크라도 밟은듯 극적으로 느려졌다. 신종 코로나 상륙 이후 한 달만에 사망자 100명을 넘어섰지만, 6개월 후인 19일 기준으로 300명에 이르지 않았다. 의료시스템이 잘 버텨낸 결과이다. 대규모 검사(test)와 신속한 추적(tracing) 적절한 치료(treatment)를 골자로 한 이른바 '3T'로 요약되는 ‘K방역’이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 국내외에서 나온다. 정부 역시 K방역을 수출한다며 성과를 자랑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동의하는 신종 코로나 상륙 6개월의 현주소다.
그러나 의료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K방역의 지속 가능성을 몹시 우려한다. 대구경북에서 한 차례 대규모 유행을 잠재우느라 정부와 의료계가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는 이야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가을 겨울철에 신종 코로나가 대규모로 유행하면 누가 어떤 힘으로 대처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크다. 정부도 역학조사관의 채용여건을 개선하는 한편, 의료기관의 중환자실 신설을 지원하는 등 장기화를 대비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들에는 시간이 걸린다. 숨을 헐떡이며 트랙을 달리는 선수에게 나중에 체력을 키워주겠으니 당장은 더 뛰라고 제안하는 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해달라
의료계는 지금 숨통을 틔워달라고 요구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국적으로 강화해서 신규 환자 규모를 ‘0’ 또는 그에 가깝게 만들어 의료진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경증환자 또는 무증상 환자를 통해서 전파되는 신종 코로나의 특성상,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국적으로 시행해도 효과는 떨어지는 반면, 사회경제적 비용은 막대할 것이라는 보건복지부 등 방역당국의 입장과 반대되는 주장이다.
최원석 고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인력이 비상상황을 계속 버틸 수 없기 때문에 대한감염학회나 의료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을 높여달라는 요구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현재의 환자 발생 규모가 의료체계가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정부는 이야기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실내 밀집도가 덜한) 여름이니까 그나마 이 정도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내국인의 국내외 이동을 차단할 수 없으니 바이러스의 전파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는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상이나 인력을 단기간에 대폭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중환자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처럼 어중간한 상황을 유지해서 국민의 생활을 어렵게 하기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기간 강력하게 시행한 이후, 보다 편한 생활을 하는 것이 낫다”면서 “병원들도 내원환자 관리가 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햇다.
해외 입국 외국인 줄여달라
해외 입국자 가운데서 발생하는 환자 역시 적극적으로 줄여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방역당국은 환자가 급증하는 방글라데시 등 4개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항공편을 줄이는 한편, 외국인 입국자에게 유전자 검사에서 음성을 받았다는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20일부터 총 6개국으로 확대되는데 이러한 조치를 확대해달라는 요구다. 정부 역시 해외 입국자가 나날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격리하고 관리할 임시생활시설과 인력 확보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16일 기준 임시생활시설 8곳 3,022실에 이미 2,362명이 입소해 있다.
천은미 교수는 “방역 차원에서는 이러한 조치를 가능하다면 모든 국가로 확대해야 한다”면서 “또 입국한 이후 재택 또는 시설격리를 마칠 때도 검사를 실시해 해외 유입 환자로부터의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천 교수는 “9월부터 독감이 돌기 시작하면 신종 코로나 환자와 구별할 방법이 없는데 이런 독감 환자까지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고 돌보기 시작하면 의료진의 부담이 엄청날 것”이라면서 “일단 국내 신종 코로나 환자를 0명으로 만든 상황에서 해외 유입 환자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섬나라 등 특수한 환경에서나 차단이 가능하다고 밝힌 데 대해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뉴질랜드가 환자를 0명을 만든 것처럼 한국에서도 가을겨울 유행 전에 최대한 환자 규모를 줄여 놓자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경증환자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아달라
행정력과 비용 부담, 장소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부가 병원에 환자를 우선적으로 입원시키는 데 대해서도 의료계에는 비판적인 입장이 많다. 경증환자는 의학적 치료가 거의 필요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들을 비용과 효율성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시키면 결국 이는 의료진의 피로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경기ㆍ수도권 생활치료센터 2곳의 정원은 311명인데 10명만 입소해있다.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생활치료센터 전체 역시 3곳뿐이다.
최원석 교수는 “경증환자가 중증으로 발전할 때 높은 등급의 병상으로 이동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환자가 병원에 한번 입원하면 퇴원하기가 어렵다”면서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을 고려하면 생활치료센터를 더 열어서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환자를 (병원 등) 중간부터 채우기 시작하면 나중에 중환자가 생겼을 때 아래(생활치료센터)는 비어있지만 환자를 입원시키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라고 우려했다.
천은미 교수 역시 “지자체별로 50병상, 40병상 이렇게 소규모라도 생활치료센터를 만들어 놓고 공중보건의나 일반의가 관리하게 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전문의가 근무하는 병원의 병상은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공무원들은 미리 준비했다가 시설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당연히 징계 등을 걱정할 수 있다”면서 “징계 걱정 없이 활동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K방역을 잊어야 K방역이 산다
의료계의 제언은 K방역이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3T를 바탕으로 한 K방역이 성과를 냈지만 유행이 장기화하는 만큼 다른 전략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종 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신종 코로나가 대규모로 유행할 경우, 중환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경증 환자는 재택에서 치료하는 방법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우주 교수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대구의 유행 이전부터 저와 의료계에서 체육관이라도 빌려서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그러한 조치(생활치료센터)가 늦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규모 유행은 오지 않는다고 하다가 가을철에 실제로 발생한다면 그때 가서 대비하면 늦었다”라면서 “해외처럼 도시 봉쇄나 재택에 머무는 상황도 미리 상세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K방역의 실패라는 비판을 받을까봐 두려워 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을 우려한 과감한 정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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